2002년 6월, 우리 국민은 정말 행복했다.
월드컵이라는 국가간 축구 이벤트에 대한 자국 팀의 응원 차원을 넘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붉은색 옷을 입고 하나가 되었던 기억 때문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물론, 평소 축구에 대해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아주머니나 아이들까지도 맹목적으로 TV 앞에 앉아 한국팀을 목청껏 응원하게 만들었던 한ㆍ일 월드컵.
중계화면의 나라 이름을 알리는 자막은 어느새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바뀌어 있었고, 우리는 두 손을 치켜들고 ‘대한민국’을 수도 없이 외쳐댔었다.
그리고 4년 후, 또 다시 2006 독일 월드컵을 목전에 둔 3월, 우리는 축구가 아닌 야구로 온 국민이 하나 됨을 다시 느껴야 했다.
과거 2002년 월드컵에서 그랬듯, 이번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세계 4강’이라는, 기대치를 훨씬 뛰어 넘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이루어낸 엄청난 성과는 선수 스스로는 물론, 우리 국민들을 놀래키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또한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 까다로운 야구규칙 때문에 야구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 까지도 모두 놀란 마음으로 TV 앞에 모여 야구대표팀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늘 경기를 하나하나 찢어 분석하느라 야구보는 재미를 상실한 채 냉정함만을 쫒아야 했던 필자의 동료들도 우리 대표팀의 경기 앞에서는 눈밭의 강아지처럼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있었다.
4강 확정 후, '내가 야구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한 어느 선수의 말처럼, 국민들은 내가 야구팬이고 아니고를 떠나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얼마 전, 월드컵 당시 지어진 축구경기장의 야구장 겸용 사용 언급에 대한 축구팬들의 반발이 문득 생각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야구팬들의 대항하는 글들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는데, 이처럼 글을 통한 분쟁아닌 분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그 시작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막연한 경쟁의식,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종목에 대한 적대적인 반감이 팬들의 마음 한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네티즌들의 선호하는 종목 차이에 따른 무차별적인 반대와
'다른 종목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진부한 놀부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축구월드컵이 벌어지는 해가 프로야구의 관중동원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과거의 결과만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걱정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보다 큰 마음으로 다가서야 할 때다.
야구팬들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보내준 야구대표팀에 대한 성원, 그리고 이어진 국내 시범경기에 정규시즌 못지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야구장을 찾아준 많은 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야 한다.
나라를 통일시키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축구에 이어 야구라는 운동경기가 이를 가능케 했고,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운동경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에게 확실히 증명해 보여 주었다.
축구나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축구와 야구는 붉음과 푸름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온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이 두가지 색깔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색깔이다. 바로 태극의 빛깔이기 때문이다.
WBC를 계기로 우리는 앞으로 4년 마다(2009년 제 2회 대회 이후) 푸른색 티셔츠를 챙겨입고 거리로 나와 한국야구 대표팀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며 때로는 탄식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될 거란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세계 4강이란 성적표는 약효가 길어야 3, 4년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성적표 뒤에 있다.
WBC를 통해 그 동안 한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매김해 온 프로야구가 단순한 인기스포츠의 지위를 넘어, 월드컵 축구가 해냈던 국민을 하나로 묶는 진정한 국민스포츠로 한단계 더 도약했다는 사실, 그것은 국민들이 보내준 뜻밖의 커다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6년 3월, 과분했던 국민적 성원은 말하고 있다. 축구나 야구로 인한 우리의 행복한 경험들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너와 내가 다를 수 없고, 또한 달라서도 안된다는 것을….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