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의 데뷔 첫 골(2월 5일)이 지난 4월 12일 자체 리그의 득점 판정단에 의해 무효로 처리된 일이 있었다.
4월 10일 아스날 전에서 데뷔 2호골을 터뜨렸던 박지성은 데뷔골 무효판정으로 이날의 2호골이 결과적으로 데뷔 첫골이 된 셈이다.
그런데 스포츠 기록의 일반적인 판정기준으로 볼 때, 그들이 제시한 박지성 첫 골 무효처리에 대한 이론적 근거기준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당시 박지성은 흘러나온 공을 달려들며 오른발로 슈팅했는데, 공이 수비수의 다리를 맞고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없는 방향으로 굴절되어 골로 연결된 것이었다.
축구의 골은 야구의 홈런과 곧잘 비유된다. 이는 득점과 직결되는 이유다. 야구에서의 통상적인 홈런은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너머로 훌쩍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담장밖으로 날아가지 않아도 그라운드 내에서 타구가 한참동안 구르는 것을 이용해 발이 빠른 주자들이 홈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그라운드 홈런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외에 홈런으로 인정받는 또 하나의 경우가 있다. 담장을 넘기지 못할 타구가 외야수의 글러브나 신체에 닿은 후, 외야석의 담장밖으로 굴절되거나(디플렉트), 골키퍼가 펀칭하듯이 튕겨져서 담장을 넘어가는 경우다.
야구규칙 6.09 에 의하면 타구가 인플라이트 상태(타구가 땅에 닿지 않은 상태를 말함)로 페어지역의 담장을 넘어가면 홈런으로 인정을 받는다. 또한 타구가 직접 담장을 넘어가지 않았더라도 땅에만 닿지 않았으면 중간에 외야수에게 맞고 담장을 넘어가는 것도 홈런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2004년 9월, 메이저리그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에서 중견수 제이슨 마이클스(필라델피아)가 우중간 안타성 타구를 포구동작 중 두 번에 걸쳐 글러브로 건져 올리려고 하다가 외야 담장밖으로 타구를 퍼내는 바람에 결국 홈런으로 만들어 준 일이 있다.
이 홈런은 ‘황당한 홈런’,'어이없는 홈런'이라는 제목하에 인터넷상에 많이 떠돌기도 한다.
이쯤에서 박지성의 데뷔골과 이러한 홈런(디플렉트 홈런)과 관련한 규칙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야구에서 앞서 말한 디플렉트나 굴절된 타구를 홈런으로 인정하는 것은 수비하는 사람이 고의나 자의적으로 타구의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수비수가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와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는 것 때문이다.
만일 고의적으로 수비수가 타구의 방향을 바꾸었다면 이는 규칙에 의해 타자에게 3개루의 안전진루권이 주어진다(그렇다고 3루타로 기록된다는 뜻은 아니다. 루타수는 타구의 내용을 분석해 공식기록원이 결정한다). 이는 수비측의 플레이 조작에 대한 페널티다.
박지성의 골도 같은 이치다. 박지성은 슈팅을 했고, 그 공을 수비수가 몸으로 막으려 했건, 피하려 했건간에 수비수의 의도된 고의적인 플레이가 아니었다. 슈팅이 몸에 맞고 굴절된 것은 수비수나 골키퍼의 처지에서 볼 때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자책골로 판단을 하는 주된 근거는 수비수의 의도적이고도 자의적인 행동여부 또는 수비수가 행위의 주체로서 그 골인이 된 상황에 영향을 주었느냐의 여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자면 박지성의 골은 자책골로 판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골의 순도만을 따진다면 몰라도….
한발 더 나아가 득점 판정단의 판단기준을 홈런에 대입하자면, 야구의 홈런에서도 타구가 체공상태로 직접 넘어가야만 홈런자격이 있다는 식이다. 예로 들었던 중견수 제이슨 마이클스의 최선의 수비행위도 곧 실책이 된다.
물론 축구의 골과 야구의 홈런에 관한 규칙에는 각각의 종목 특성을 살린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지만, 스포츠의 '기록판정'이라는 일이 갖고 있는 원론적인 면에서는 그 적용원리가 크게 다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