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이승엽의 희생번트
OSEN 기자
발행 2006.05.08 16: 36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로 연일 맹타를 터뜨리던 이승엽이 지난 4월 9일에 치러진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원정경기(나고야돔)에서 3-4로 뒤지던 7회 무사 1, 2루 상황에서 보내기 번트를 시도한 것이 화제가 됐다.
파울볼에 그쳐 희생번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대신 안타를 만들어 냄으로써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상황에서 팀의 중심타자에게 과연 보내기번트를 시켰어야 했는가에 따른 뒷이야기가 무성하게 나돌기도 했다.
팀의 4번타자이자 그들의 처지에서는 용병선수인 이승엽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한 것은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관과 경기운영의 고유권한이라는 점에서 맞다 틀리다로 딱부러지게 선을 그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팀의 중심타자에게 내려진 번트지시의 타당성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희생번트 실패의 이면에 담긴 기록적인 부분, 즉 불발로 끝나버린 이승엽의 희생번트 시도는 공식기록에 남지 않는다는 맹점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그나마 이승엽은 번트 시도 행위 자체가 뉴스꺼리로 떠오를 만큼의 슈퍼스타급 선수였기 때문에 중계화면과 언론의 보도를 통해 팬들이 알 수 있었지만, 일반 선수들의 번트 실패는 공식기록상 전혀 없던 일처럼 취급되고 있다. 적어도 현재 일본의 공식기록 작성 방법에 있어서는 그렇다.
이러한 번트파울 무시 기록방법의 가장 큰 허점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경기 기록지를 다시 들여다 보게 될 때, 번트 실패가 발생한 순간을 기록지 상에서 도저히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타자가 희생번트를 시도했지만 파울볼이 되어버린 경우를 기록지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작년(2005)까지는 전혀 없었다.
팀의 자체 고과 기록에서는 희생번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나름대로의 체크방법을 갖고 있긴 하지만, 공식기록에서는 일상적인 파울볼,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번트파울 구별표기의 시작은 이승엽의 경우처럼 희생번트 시도행위에 대한 자료가 기록지 상에 남는다는 것과 함께 감독들의 찬스에 따른 희생번트 지시 빈도수와 성패, 또한 선수들의 번트성공율을 파악하는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타격과 번트 행위의 구별은 세분화 된 기록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의 근거가 된다는 생각에 기록위원회는 올 시즌(2006)부터 번트를 시도했으나 파울볼에 그친 경우를 구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록법을 적용하고 있다.
기록하시는 분들을 위해 참고로 설명하자면, 기존의 파울볼은 세모(△)를 이용해 표기했는데, 번트 파울볼의 경우엔 이 세모안에 검게 칠을 해서 번트파울을 구별하고 있다.
또한 번트를 대려다가 스윙이 선언된 것에는 기존의 스윙표기법(○+ \)에 역시 까맣게 칠을 하게 된다.
과거 기록법에서 검게 칠을 한 세모 표기는 땅볼 파울타구를 뜻하는 부호였지만, 언제부턴가 파울타구에 대한 플라이와 땅볼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사장(死藏)되었던 부호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용도변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엽의 번트실패가 기록에 남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은 어느 개인의 생각이 아니다. 미래의 야구 기록과 통계의 발전을 위한 시대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좀더 세분화되고 추측보다는 사실에 기초를 둔 야구통계를 위한 더 많은 탐구와 노력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야구중계 방법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의 화면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야구가 기록경기라는 자부심에도 변화는 필수다.
이승엽과 번트에 관한 문제 하나.
이승엽이 삼성 소속으로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9년) 과연 몇 번이나 희생번트를 기록했을까?
통산기록을 뒤져보니 이승엽의 희생번트는 6개였다. 이번 경우처럼 번트를 시도했는데 파울볼이 되었던 것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일년에 채 한 개도 시도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야구는 적어도 팀의 중심타자에게 만큼은 잔야구를 시키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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