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도전 반세기](1)참패의 연속, 스위스 월드컵
OSEN 기자
발행 2006.05.20 10: 30

한국 대표팀이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고 본격적으로 월드컵에 나선 것이 1954년의 일이었으니 벌써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도 50년의 세월이 훌쩍 뛰어넘었다. 1933년 출범한 조선축구협회가 1948년 대한축구협회로 명칭이 바뀐 뒤 전쟁의 포화를 딛고 일본과 두 차례 가진 지역 예선에서 1승 1무라는 좋은 성적으로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이 벌써 52년 전의 일이다.
◆ 하마터면 예선전도 못치를 뻔
한국이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예선전을 치르지 못할 뻔했다는 일화는 웬만한 축구팬이면 다 아는 유명한 얘기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수교국가이자 36년동안 우리 국토를 강점한 바 있는 일본 대표팀을 한국 땅에 들여보낼 수 없다고 호통쳤고 결국 모든 경기는 일본 도쿄에서 치려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기를 앞두고 국제 전화를 통해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고 말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결국 1차전 5-1 승리에 이어 2차전 2-2 무승부로 아시아를 대표해 월드컵에 나간 한국은 그러나 세계의 높은 벽을 이내 실감하며 처절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 체면 구긴 아시아 대표
당시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팀은 모두 12개팀이었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유일했다. 그야말로 아시아 대표 자격으로 나갔지만 헝가리와의 경기 10시간 전에 스위스 땅을 밟은 한국 대표팀은 여독과 시차적응을 할 새도 없이 그라운드를 밟았고 결국 0-9로 참패했다.
당시 세계 축구를 주름잡던 헝가리는 푸스카스라는 명 스트라이커가 있었고 결국 경기시작 12분만에 푸스카스에게 첫 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한국은 전반 18분 란토스, 전반 23분 치보르, 전반 24분과 36분 콕시스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전반을 0-5로 뒤진 채 마쳤다. 후반 5분만에 콕시스에게 골을 내줘 해트트릭을 허용한 한국은 후반 30분과 38분에 팔로타스에게 실점한 뒤 선제골을 뽑아냈던 푸스카스에게 후반 44분 다시 골을 빼앗기며 참패의 치욕을 맛봤다.
◆ 터키에도 0-7 참패
첫 경기를 허무하게 진 한국은 터키만이라도 이겨보자며 절치부심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전반에만 4골, 후반에 3골을 내주며 0-7로 무너진 것.
한국은 같은 조에 속한 서독과도 경기가 예정돼 있었지만 서독이 터키에 7-2로 이기면서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헝가리 서독이 8강 진출을 확정지어 당시 대회 규정에 따라 한국은 경기를 치르지도 못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결승전서 서독이 헝가리를 3-2로 꺾고 우승했으니 한국은 본선 첫 출전서 '죽음의 조'에 속했던 것이다. '월드컵 초년병'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했던 셈이다.
◇1954년 월드컵 멤버
▲ GK = 홍덕영 함흥철
▲ FB = 박규정 이종갑 박재승
▲ HB = 이상의 김지성 강창기 한창화 민병대 주영광
▲ FW = 이수남 박일갑 정남식 최정민 성낙운 정국진 최영근 이기주 우상권
tankpark@osen.co.kr
54년 월드컵 대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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