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모두 쓰라린 실패를 맛봤지만 세 차례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한국은 어느새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 대접받고 있었다.
한국은 강호의 이미지를 밑바탕으로 일본에 이어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고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 임했다.
한국은 예선 1라운드에서 바레인 홍콩 레바논 인도와 같은 조에 속한 한국은 바레인 원정경기에서 득점없이 비긴 것을 제외하고 7승 1무, 승점 15에 득 23, 실 1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최종예선에 올랐다.
하지만 최종 예선 첫 판서 이란을 3-0으로 완파, 출발은 좋았으나 이라크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기고 일본에게 0-1로 덜미를 잡히면서 3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마지막 상대는 북한. 한국이 북한을 2골차 이상으로 이기고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중 한 팀이 승리하지 않을 경우에만 미국 월드컵 본선티켓을 딸 수 있었다. 한국은 북한전 막판 3-0으로 앞선 상태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4-3으로 물리치고 본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먼저 접한 뒤 이라크전서 일본이 지거나 비기기만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경기 종료 직전까지도 2-1로 앞서 있어 한국의 3회 연속 진출은 물건너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자파르가 마지막 순간 헤딩골로 극적인 2-2 동점을 만들어주면서 한국은 극적으로 월드컵에 진출했고 첫 월드컵 진출을 꿈꿨던 일본은 1분을 지키지 못해 좌절했다. 한국에게는 '도하의 기적', 일본에게는 '도하의 치욕'이 된 순간이었다.
▲저력을 보여줬다, 스페인전
극적으로 3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했지만 어려운 조에 편성되는 징크스는 그대로였다. 바로 전 대회인 이탈리아 월드컵의 우승국인 독일과 같은 조가 된 것. 여기에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1-3 패배를 안긴 스페인이 같은 조가 됐고 남미 지역 예선에서 의외의 선전으로 올라온 볼리비아가 편성됐다.
그래도 미국 월드컵은 좀 나은 조 편성이었다. 볼리비아가 남미 지역 예선을 통과했지만 약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확실한 1승' 상대로 여겨졌기 때문.
첫 상대는 바로 스페인이었다. 한국은 전반 25분 스페인 수비의 핵 나달이 퇴장당하며 수적 우세를 점했지만 후반 들어 살리나스와 고이코에체아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다시 패색이 짙어갔다.
그러나 네 번째 월드컵 본선에 오른 한국은 저력을 과시했다.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스페인 수비수의 발을 맞고 골네트를 흔든 데 이어 후반 44분 서정원이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동점골을 터뜨렸다.
극적인 2-2 동점을 만든 서정원의 어퍼컷 골 세리머니는 두고두고 TV 애국가 연주 때 방영되기도 했다.
▲ 아까운 첫 승, 볼리비아전
승점 1을 챙긴 한국은 볼리비아를 꺾고 첫 월드컵 16강에 오를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드컵 직전 매겨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이 36위로 41위의 볼리비아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은 볼리비아를 상대로 파상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황선홍이 수 차례의 찬스를 놓치며 끝내 골이 터지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골 결정력 부족으로 볼리비아와 득점없이 비기며 마지막 상대인 전 대회 우승국 독일과의 경기에서 최소한 비겨야만 16강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투혼은 빛났지만, 독일전
이미 볼리비아에 이기고 스페인과 비기며 1승 1무로 16강이 확정됐던 독일은 조 1위를 확실하게 차지하기 위해 한국을 시종일관 몰아붙였다.
전반 11분 현재 독일 대표팀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18분에 리들레, 전반 35분에 클린스만에게 골을 내주며 0-3으로 끌려갔다. 특히 클린스만의 두번째 골은 최인영의 실수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너무나 뼈아팠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한국은 후반 들어 맹공을 펼치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댈러스의 코튼볼 경기장에 지친 독일을 시종일관 몰아붙였다. 결국 후반 7분 박정배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의 골을 시작으로 후반 18분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으로 2-3까지 쫓아가는데 성공했다.
2-3으로 만든 뒤 30여분의 시간이 더 주어졌고 한국은 완전히 녹초가 된 독일을 쉴 새 없이 몰아붙였지만 끝내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다.
결과는 2무 1패, 득 4-실 5. 조 3위 6개국 중 4개국에 주어지는 와일드 카드로 16강에 오를 수도 있는 성적이었지만 물고 물리는 접전이 있었던 조가 많아 16강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은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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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전서 극적 동점골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서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