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시작한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이 1996년 5월 31일 한국과 일본 공동개최로 결정되면서 한국의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더욱 중요하게 됐다.
당시 대표팀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청소년 4강 신화를 썼던 박종환 감독. 그러나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996년 12월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게 2-6으로 참패했고 결국 이듬해 1월 차범근 감독 체제로 월드컵 지역 예선을 치르게 됐다.
다음 대회 월드컵 개최 국가로서 프랑스 월드컵에 반드시 나가야 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로서는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었고 차범근 감독은 내심 차기인 한일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바라고 있었지만 위기에 빠진 대표팀을 구하기 위해 지휘봉을 잡았다.
역대 대표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던 대표팀은 그러나 태국 홍콩과 치른 1차 예선을 3승 1무의 전적으로 가볍게 통과한 뒤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가진 최종 예선에서 6경기까지 5승 1무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조 1위로 프랑스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특히 대표팀은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38분 서정원의 헤딩 동점골에 후반 41분 이민성의 역전 결승골로 '도쿄 대첩'을 만들어내 당시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가모 슈의 해임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나라여서 그랬을까. "함께 월드컵에 가자"는 구호가 붙은 가운데 치러졌던 일본과의 홈경기서는 0-2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본선행을 확정지은 상태서 치른 경기라 아픔은 덜했다.
▲ 하석주가 웃고 울리고, 멕시코전
프랑스 월드컵 예선 통과로 자동 출전권이 주어지는 차기 대회까지 5회 연속 본선행을 예약한 한국의 조별 리그 상대는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였다. 멕시코는 북중미의 강호로 꼽히지만 그런대로 해볼 만하다는 평가였고 벨기에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붙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악재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나서기 직전 가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새' 황선홍이 부상을 당했던 것.
결국 김도훈을 원톱으로 하는 작전을 들고 나온 대표팀은 전반 28분 하석주의 프리킥으로 월드컵 본선 사상 첫 선제골에 한국의 월드컵 10호골을 만들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불과 2분 뒤 하석주가 백태클로 퇴장(사진) 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직면했고 후반 5분 펠라에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뒤 후반 29분과 후반 39분에 에르난데스에게 연속골을 얻어맞으며 1-3으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 차범근 감독 전격 경질, 네덜란드전
멕시코에게 허무하게 역전패한 한국은 우승후보인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두 번째 경기를 치렀다.
오렌지 물결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주눅이 든 한국은 비교적 선전하는 듯했으나 전반 38분 코쿠, 전반 42분 오베르마스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면서 0-2로 뒤졌다.
한국은 0-3에서 2-3까지 따라갔던 미국 월드컵 독일전 경험을 바탕으로 맞공세를 펼쳤지만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노련한 작전에 휘말리며 후반 26분 베르캄프, 후반 35분 반 호이동크, 후반 38분 데 부어에게 연속골을 잇따라 허용하며 0-5로 대참패를 맛보고 말았다.
44년 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게 0-9, 터키에 0-7로 진 이후 가장 큰 점수차로 패한 한국은 결국 현지에서 차범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는 강수를 두고 벨기에전에 임했다.
▲ 한줄기 희망을 보여줬다, 벨기에전
김평석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된 가운데 한국은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그야말로 투혼을 보여줬다. 전반 5분만에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26분 하석주의 프리킥을 받은 유상철이 슬라이딩 슈팅으로 벨기에의 골문을 흔들었고 이후에도 벨기에를 위협했지만 월드컵 본선 첫 승리를 따내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한국은 이임생이 머리를 다쳐 붕대를 감고 뛰는 등 모든 선수가 네덜란드전 대참패 망신을 만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맹활약,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선전을 펼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줬다.
그러나 결과는 1무 2패, 득 2-실 9. 3전 전패한 미국과 일본에 앞선 전체 32개 참가국 중 30위로 프랑스 월드컵을 마쳤다. 스위스 이탈리아 대회에 이어 유럽무대에서 약한 한국 대표팀의 징크스가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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