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나자 당장 한일 월드컵이 눈 앞에 다가왔지만 한국은 선장도 구하지 못한 채 무려 2년 여의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1998년 0-5의 대참패를 안겼던 네덜란드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를 2000년 12월에 '모셔왔고' 2001년 홍콩 칼스버그컵부터 그의 지휘 아래 월드컵을 준비했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게 진 것을 비롯해 유럽 원정에서 체코에게도 0-5로 지며 '오대영 감독'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사퇴 압력까지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지원 아래 계속 감독직을 수행했고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점점 전력이 살아나면서 자신감을 갖고 월드컵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황선홍과 유상철의 연속골 - 첫 승리, 폴란드전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 같은 조가 됐을 때 그리고 일본이 벨기에 러시아 등과 같은 조가 됐을 때 국내 팬들은 불운한 조 편성에 경악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자신감이 있었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큰 소리는 바로 폴란드전부터 그대로 현실이 됐다. 당시 폴란드는 최고의 수문장이라고 손꼽히던 예르지 두덱이 골문을 지키고 있었지만 자신감을 얻은 태극전사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반 26분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올라온 이을용의 패스가 폴란드 문전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자 황선홍의 왼발 발리슈팅이 터졌고 고대하던 첫 골이 터졌다.
이어 한국은 후반 8분 유상철의 중거리 쐐기골로 2-0으로 앞서나가며 승리를 예감했고 결국 역대 월드컵 15경기만에 첫 승리를 따냈다. 4무 10패 만에 처음으로 거둔 승리였다.
▲안정환의 동점 헤딩골, 미국전
부산에서 유럽의 숨은 강호 폴란드를 여유있게 격파한 한국은 미국까지 꺾고 2연승으로 16강에 가겠다는 각오에 차 있었다.
전반 22분 매티스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 다소 자신감이 떨어지는 듯했지만 후반 33분 안정환의 헤딩 동점골로 극적인 1-1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안정환은 전반 도중 이마 출혈 부상을 입은 황선홍을 대신해 교체 출전, 깨끗한 동점골을 꽂아 넣은 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억울하게 금메달을 뺏긴 김동성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오노 세리머니'를 펼쳤다.
1승 1무로 16강 진출이 눈 앞에 보이긴 했지만 한국과 미국이 1승 1무, 포르투갈이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최소한 비겨야 16강에 오를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상대 선수 2명의 퇴장 그리고 박지성의 골, 포르투갈전
당시 모 스포츠 용품사는 2가지 신문 광고를 마련했다. 하나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비기거나 이겨 16강에 진출할 경우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경우에 대비해 제작된 것이었다.
16강 진출용은 당연히 축구팬들이 환호하는 사진이었고 실패용은 약간 침울해하는 표정 속에 다음을 기약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실패용은 신문에 실릴 일이 없었다.
루이스 피구 등 '골든 제네레이션'을 앞세운 포르투갈은 한일 월드컵 우승 후보국 중 하나였지만 한국 역시 당당하게 맞섰다.
히딩크 감독의 파워 프로그램을 충실히 소화한 덕분에 체력적으로 우세를 보였던 한국은 주앙 핀투의 퇴장에 이어 베투의 경고 2회로 11-9의 수적 우세까지 점했고 결국 박지성의 후반 25분 선제 결승골로 포르투갈을 격침시키는 데 성공했다.
포르투갈은 수적 열세에 몰리자 비기고 싶은 생각에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펼쳤지만 박지성의 한 방에 '집으로' 향했다.
결국 한국은 2승 1무, 승점 7로 조 1위를 당당히 차지, 16강전서 이탈리아와 8강 진출을 놓고 다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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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전서 선제골을 넣은 황선홍(가운데) 등이 환호하며 달려가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