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미국 폴란드를 따돌리고 D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한국의 16강 상대는 G조 2위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에콰도르에게 2-0으로 승리한 뒤 크로아티아에게 1-2로 덜미를 잡히면서 16강 진출이 힘들어보였지만 멕시코와 1-1로 비기고 에콰도르가 크로아티아를 1-0으로 이겨줌으로써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극적인 안정환 골든골 - 16강전(이탈리아전)
이탈리아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안정환이 경기 초반 얻은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한국은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했고 경기 종료가 가까워져오도록 동점골을 넣지 못해 그대로 16강에서 주저앉는 듯했다.
하지만 역사는 새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후반 38분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하며 공격수를 무려 5명이나 내보낸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작전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후반 43분 황선홍이 페널티지역 근처에서 올린 공을 안정환이 받아 문전으로 살짝 띄워줬고 이것이 상대 수비수의 몸을 맞고 흐르자 설기현이 왼발로 땅볼 슛, 이탈리아의 철벽 수비를 뚫었다.
이후 공세를 강화한 한국은 연장 전반 13분 프란체스코 토티가 페널티지역에서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었으나 모레노 심판이 헐리웃 액션(시뮬레이션)이라며 퇴장을 명령, 오히려 수적 우세를 점했고 결국 안정환은 연장 후반 11분 이영표의 센터링을 절묘한 헤딩으로 성공시키는 골든 골로 승부를 마무리했다.
116분의 혈전이 마감되는 순간임과 동시에 한국을 상대로 1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다던 이탈리아의 콧대를 납작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운재의 선방 - 8강전(스페인전)
연장 혈전을 치르고 불과 4일만에 광주에서 치른 경기는 그야말로 한국에 있어서 악재나 다름없었다. 스페인 역시 아일랜드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한국보다 이틀이나 더 쉬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에서 한국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광주의 따가운 햇볕은 한국보다는 더운 날씨에 더 익숙한 스페인에 유리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히딩크 감독의 파워 프로그램으로 쌓은 체력과 함께 무서운 정신력, 4강을 염원하는 팬들의 응원까지 업고 스페인과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쳤고 결국 연장 전후반까지 0-0 무승부로 끝나 승부차기에서 승패를 결정짓게 됐다.
한국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1~3번 키커인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을 비롯해 스페인의 이에로 바라하 샤비 등이 모두 성공시켰고 한국의 4번째 키커인 안정환도 이탈리아전 페널티킥 실축 부담감을 잊고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스페인의 4번째 키커는 호아킨. 호아킨은 속임 동작으로 살짝 멈칫한 뒤 오른쪽 골문을 향해 찼지만 이운재는 이에 속지 않고 침착하게 공을 막았고 결국 한국의 다섯 번째 키커인 홍명보가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면서 4강을 결정지었다.
지난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에서 4강 신화가 쓰여진 이후 무려 19년만에 광주에서 다시 세계 4강 신화가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아쉬운 발락의 한방 - 4강전(독일전)
4강 신화를 쓰고 사기가 하늘을 찔러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요코하마로 가자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한국은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6강전과 8강전 모두 연장 접전을 치렀고 특히 8강전을 치른 뒤 불과 3일만에 독일과의 4강전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독일은 무려 6일 간격으로 16강전과 8강전을 치렀고 미국을 가볍게 꺾은 뒤 4일만에 한국을 맞이한 데다 원래 체력에 있어서는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였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신체적으로 훨씬 앞섰다.
그러나 한국은 역시 정신력의 팀이었다. 비록 올리버 칸의 선방을 뚫지 못했지만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쳤고 후반 30분 미하엘 발락에게 선제 결승골을 내주고 나서도 독일의 문전을 위협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끝내 독일 골문을 열리지 않았고 한국은 요코하마 대신 3~4위전이 열리는 대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기약한다 - 3~4위전(터키전)
6만 명이 넘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은 터키를 맞았다. 터키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0-7 참패의 악몽을 안긴 바로 그 팀이었다.
한국은 출발이 나빴다. 기록상으로는 1분이었지만 킥오프 후 10여 초만에 터키의 첫 공격서 하칸 슈쿠르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것. 불과 8분 뒤 이을용의 골이 터졌지만 4분도 지나지 않아 일한 만시스에게 골을 내준 데 이어 전반 32분 아시 만시스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전반에만 1-3으로 뒤졌다.
결국 한국은 후반 인저리 타임에 송종국의 골로 2-3까지 뒤쫓아갔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 뒤였고 19년 전 청소년대회와 같은 4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히딩크 감독 역시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올렸던 4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나라에서 4위까지 올라간 나라로 월드컵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었으며 이후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고 미래를 기약하게 됐다.
이런 자신감은 지금 현재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태극전사들의 큰 자산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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