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 때(6월19일), 야구계는 박명환(두산)이 경기 중 떨어뜨린 양배추 한 장으로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 했다.
잠실에서 열렸던 두산-한화전에서 혼신의 투구를 하던 박명환의 모자가 벗겨지면서 그 안에 들어있던 양배추 한 장이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평소 갑상선 증세가 있었던 박명환이 더운 여름철, 머리의 열을 식히기 위해 민간요법 차원에서 모자 속에 양배추를 넣고 경기에 나섰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필자는 TV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순간, 너무나도 뜻밖의 재미있는 해프닝에 한참을 웃어야 했다. 팬들 역시 이 해프닝을 전하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박장대소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양배추가 떨어진 지 바로 이틀 뒤인 21일, KBO는 규칙위원회를 신속하게 열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 ‘양배추가 공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물질이 투구 중에 떨어지는 것은 타자의 타격(정확히는 선구안)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양배추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규정상, 박명환이 양배추를 계속 사용하려면 처방전과 함께 KBO의 사전승인이 필요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에 그까짓 양배추 한 장에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나타내는 팬들이 많았는데, 야구관계자들이라 해서 생각이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현장에서 해프닝을 지켜본 책임자들도 처음부터 떨어진 양배추에 규칙위반을 지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관련규칙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투수가 이물질을 몸에 붙이거나 지니고 있을 경우에 퇴장시킨다’ 는 문구(8.02)가 엄연히 존재했지만 (1999년 메이저리그의 김병현도 애리조나 시절 파스를 목뒤에 붙이고 나왔다 이 규칙에 붙들려 퇴장당한 적이 있다), 이러한 규칙을 적용해야 할 사안이라는 생각조차 얼른 들지 않았을 만큼 해프닝성이 아주 강했다.
따라서 기자들의 규정관련 질문에도 “양배추가 공의 변화나 선수의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부정투구로 해석하기 힘들다”라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고, 선수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용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현장에서 별다른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양배추가 다른 선수들과 관련한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본 순간, 양배추가 투구 중 떨어져 타자의 타격행위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이물질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꼭 양배추가 아니더라도 다른 물질을 이용하는 일이 생길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양배추 하나가 아닌 총괄적인 규정이 필요했고, 논란거리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결정을 내릴 의무가 있었던 KBO는 이를 규칙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다루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날 이후, 야구팬들은 박명환이 투구하다가 떨어진 양배추를 다시 추스려 모자에 넣고 투구를 계속하는 재미있는 광경을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팬의 처지에서는 빼꼽 쥐고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웃음거리 하나를 잃은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본다는 뜻이다. 어느 한쪽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다른 한쪽에게는 생각하기 나름으로 아주 심각하게 다가서기도 한다.
한편 곁가지로 박명환의 6월 19을 전후한 페이스에 호기심이 자꾸만 가는 것은 왜일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박명환은 작년 6월 19일이후, 2승 3패에 그치며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양배추 해프닝이 있기까지 시즌 9승무패의 파죽지세를 내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대조적인 결과다. 물론 어깨부상과 체력저하라는 이중고로 갑작스레 하강곡선을 그린 것이라지만 하필이면 분기점에 양배추 해프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 시즌 박명환은 6월 19일 현재 6승4패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의 양배추 해프닝을 기점으로 찾아들었던 불운을 털어내고, 올해엔 자신의 페이스를 잘 유지해 초반 부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4강 다툼에 뛰어든 두산의 포스트 시즌 진출의 꿈을 함께 이끌어 낼 수 있을 지 자못 궁금하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