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12)
OSEN 기자
발행 2006.08.30 08: 28

“목표지점까지 가지 못하면 내려올 생각마라. 힘이 부친다면 내가 지원해 주겠다”.
“아닙니다. 제가 다 하고 오겠습니다”.
29일 오후 3시 베이스캠프에 대원들이 모였다. 전날 휴식을 취한 뒤 탈레이사가르 북벽 공략을 위해 대원들이 출발하는 시간이다. 박희영 등반대장이 비장한 지시를 내렸다. 새롭게 편성된 2인조 루트작업 대원 중 한 명인 여병은 대원의 각오 역시 굳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분위기였다. 원정대는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정의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현재 쿨루와르를 통과, 6200m 지점까지 고정로프 설치를 마쳤다. 남아 있는 구간은 표고차 300~400m 정도의 암빙벽 혼합지대다. 더구나 얼음의 두께가 얇아 확보물 설치가 쉽지 않고 운행에도 애를 먹는 구간이다. 여기를 돌파해야 최정상부의 블랙피라미드에 붙어 볼 수 있게 된다. 암빙벽 혼합지대와 피라미드지역은 우선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 등반의 난이도마저 지금까지 지나온 코스 보다 더욱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돌파해 내기 위해 원정대는 전날 루트 작업을 종전 3인 1조 2교대 방식에서 2인 1조 3교대 방식으로 교체했고 여차하면 박희영 대장도 여기에 참여한다는 대비책까지 마련했다.
이날 베이스 캠프를 출발한 대원은 모두 5명. 여병은, 윤여춘 대원이 북벽에 붙어 고도를 높이게 되고 김형수, 김옥경, 한동익 대원 등 3명은 두 대원의 등반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장비와 식량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다섯명의 대원은 해발 4900m ABC에서 하룻밤을 잔 후 30일 해발 5400m의 캠프2까지 진출하게 된다.
대원들의 출발에 앞서 박희영 대장, 서우석 기술위원, 장봉완 서울시산악연맹 부회장, 김남일 서울산악조난구조대장이 베이스캠프 옆에 있는 추모 동판을 찾았다. 지난 1998년 이곳 탈레이사가르에서 산화한 한국산악인 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동판이다. 이들 산악인들은 탈레이사가르 북벽의 최대 난코스로 여겨지는 블랙피라미드까지 다 올라섰으나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설원지대에서 추락사했다. 김남일 대장은 먼저 간 악우들을 추모하면서 이번 산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대원들을 지켜 줄 것을 기원했다.
박희영 대장이 달레이사가르 북벽을 향해 출발하는 대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 뒤 전체 대원들이 베이스캠프 중앙에 모였다. 모두 스틱을 한 곳에 모은 후 “오르자”는 구호를 힘차게 외친 뒤 스틱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드디어 출발. 각자 운행에 필요한 배낭을 짊어진 대원들은 베이스 캠프를 뒤로 하고 ABC를 향해 힘찬 발길을 옮겼다.
대원들의 모습이 빙퇴석이 만들어 놓은 언덕 너머로 사라질 때 베이스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편 조긴 등반을 목표로 하는 후발대원들은 이날 ABC까지 진출, 고소적응 훈련을 가졌다. 김형섭 단장을 비롯 8명의 대원이 출발 4시간 후 무사히 ABC에 도착했고 이날 오후 다시 베이스캠프에 귀환했다. 중간에 바람이 거세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고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악천후 였지만 전체 대원 모두 당초 예정한 대로 고소적응 훈련을 성공리에 마쳤다.
nanga@osen.co.kr
29일 ABC 출발을 앞두고 김형수 대원(왼쪽)과 김옥경 대원이 배낭을 꾸리고 있다. / 대원들이 베이스캠프에서 탈레이사가르 북벽등정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1998년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산화한 한국 산악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동판을 찾은 김남일 서울시산악조난구조대장이 추모사를 한 뒤 재배하고 있다. / 5명의 대원들이 베이스 캠프를 출발 운행에 나서고 있다. /원정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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