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오승환의 세이브 신기록에 숨어 있는 것
OSEN 기자
발행 2006.09.26 14: 53

삼성 라이온즈의 오승환(24)이 지난 9월 20일, 대구 홈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5-3으로 앞서 있던 9회에 마운드에 올라 시즌 43번째 세이브를 올리며 한국프로야구 세이브부문의 새로운 신기록을 작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진필중(당시 두산)이 갖고 있던 시즌 42세이브(2000년. 두산)의 종전기록을 넘어선 것으로, 기록의 숫자적 의미 외에도 진필중이 133경기에서 세웠던 기록을 불과 117경기만에 새로운 기록으로 갈아치웠다는 점에서 파죽지세로 달려온 오승환의 구위를 가늠할 만하다. 그런데 오승환의 세이브 기록행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구석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 팀 마무리 투수의 등판시기는 최종회인 9회에 맞추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등판 타이밍으로 생각하고 있다. (팀이 일찍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 8회부터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심하게는 7회부터 등판시키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다) 오승환의 등판시기를 살펴봐도 6:4 의 비율로 8회에 조기 등판한 경우보다는 9회에 등판한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8회부터 등판한 경우는 팀이 위기에 몰리거나, 버거운 타자를 만나 굳히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일찍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지만, 팀이 2, 3점차 정도의 리드를 안고 있는 주자 없는 상황에서 분명 다급한 처지가 아님에도 8회 2사 후,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린 경우를 가끔 찾아볼 수 있다. 마무리 투수의 투구수를 조금이라도 줄여 주는 것이 다음 경기나 당사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왜 그랬을까? ‘중간계투를 담당하는 투수들에게 8회까지 맡긴 후, 9회에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려도 충분히 세이브가 기록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상대방이 아닌 자기팀에 의해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는 변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승환의 세이브 상황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만일 3점차로 팀이 리드하고 있는 상태에서 오승환을 8회에 올리지 않고 그대로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가 팀이 추가점수를 올리면 9회에 등판해야 하는 오승환으로선 자칫하면 세이브 상황이 날아가 버려 등판 자체가 아예 무산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자세한 세이브 기록 규칙은 이전에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른감이 있지만 일단 세이브 상황이 유효한 8회에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려, 이후 혹시 변할지도 모를 상황변화(점수차)에 미리 대처한다는 복선이 깔려있는 것이다. 올 시즌 선동렬 감독은 동일 타자에 대한 투구 도중에 유리한 볼카운트에도 투수를 교체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불리한 볼카운트가 되면 더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투수를 바꾸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와는 반대로 아주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구위가 한 수 위거나, 투구형태가 완전히 다른 투수를 올려 심리적 부담이 커진 상대 타자를 간단하게 처리하고 위기를 넘기려는 의도에서다. 이는 경기 흐름에 따른 승부처의 맥을 한박자 빠르게 짚어나가는 경기운영술(?)로서 세이브 기록에 관한 투수운용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마무리 투수가 일찍 등판하는 것은 결코 팀이나 선수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다. 투구수가 불어나게 되고, 상대하는 타자와 이닝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위험부담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승환은 등판시기와 관계없이 해태시절의 선동렬과 비견될 정도의 엄청난 구위로써 매경기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고, 한국프로야구 세이브 신기록이라는 커다란 열매를 거뒀다. 한발 더 나아가 오승환은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의 좌완투수 이와세 히토키가 작년에 세운 46세이브의 아시아 신기록에도 3개차로 접근해 있는 상태(9월25일 현재)다. 팀의 잔여 경기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더욱이 세이브 기록이라는 것이 팀이 리드를 하고 있어야 하고, 리드 상황이라고 해도 점수차에 따른 조건이 맞아야 하는 등의 제약이 붙어 있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홈구장에 설치된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 카운트다운 보드판의 숫자를 하나씩 줄여야 하는 오승환의 기록 도전이 과연 어떤 끝맺음을 보여줄 지, 페넌트레이스 종반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치열한 순위다툼 못지않은 흥미를 던져주고 있는 가을이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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