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도중, 이종범(36)이 부진한 성적 때문에 한 달 이상(7월27일~8월30일) 2군으로 내려가자 기아 타이거즈의 팬들은 팀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던 그의 2군행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더군다나 그 시점이 기아가 플레이오프 진출의 턱걸이 선인 4위 주변을 맴돌던 시기였으니, 팬들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한여름, 부진한 성적 때문에 이종범이 2군행을 통보받았다는 기사를 접하고 필자는 한때 한국야구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종범이라는 이름 석 자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함께 다른 한켠으로는 그의 기록과 연관해 짙은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종범이 정규시즌 타율 4할과 시즌 200안타에 도전하던 1994년(팀당 126경기)을 회상해보자. 그 해, 이종범은 4할에 육박하는 타율(0.393)뿐만 아니라 시즌 최다안타(196개), 시즌 최다도루(84개) 등을 기록하며 출루율 포함 타격부문 4관왕에 올랐고, 이러한 눈부신 활약을 토대로 시즌 MVP 투표에서 52표중 49장의 1위표를 독식하며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다. 당시 이종범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가 은퇴할 때까지 만들어 낼 기록에 대해 그 높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을 정도였다. 1995년 병역 복무관계로 홈경기에만 출장해야 하는 제약(위수지역 이탈 금지)이 따르기도 했지만, 1998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이종범은 매년 3할2, 3푼대의 고타율과 매년 150개 안팎의 안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 후 다시 국내에 복귀해 풀시즌을 소화한 4년간(2002~2005년), 시즌 3할 전후의 타율과 매년 평균 140개 정도의 안타를 만들어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여전히 보여주었던 이종범이다. 역사는 가정이 필요없다지만, 이종범이 ‘국내에서 계속 활동했더라면…’ 이라는 가정 속에 그의 기록을 유추해보기로 한다. 현재 한국프로야구 타격부문의 개인 통산기록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고 있는 양준혁(37. 삼성)도 이종범과 같은 해인 1993년에 데뷔했다는 점에서 비록 가상이지만 간접비교가 가능하다. 14년(1993~2006년)간 양준혁의 출장경기수는 1752경기, 통산 안타수는 1946안타, 홈런은 309개,득점은 1111점, 타점은 1200점, 2루타는 386개, 루타수는 3305루타였다. 이를 경기당으로 환산하면 양준혁이 만들어내는 안타수는 1.11개, 득점은 0.63점, 타점은 0.68점, 홈런과 2루타는 각각 0.18과 0.22, 루타수는 1.89다. 이종범이 국내에서 뛴 햇수는 올해까지 11년(1998~2000년 제외). 출장경기수는 1195경기, 통산 안타수는 1431안타, 득점은 913점, 도루는 482개, 2루타는 265개, 루타수는 2277 루타이다. 역시 경기당으로 환산하면 이종범의 경기당 안타수는 1.20개, 득점은 0.76, 2루타는 0.22, 루타수는 1.91, 도루는 0.40이 나온다. 이 수치를 양준혁의 출장경기수(1752)와 같다는 가정 하에 이종범에게 그대로 대입해 통산 기록을 유추해보면…. 통산 2102 안타, 득점은 1331점, 루타수는 3338, 도루는 700개라는 예상수치가 나온다. 현재의 양준혁을 몇가지 부문에서 훨씬 앞서는 기록이다. 언제부턴가 대기타석에 있는 이종범과 상대하기 위해 앞타자를 고의 볼넷으로 걸려보내는 일을 가끔 본다.이종범과 상대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이종범인데…. 세월은 비켜갈 수가 없구나’라는 인생의 진리를 곱씹으며 조금은 딱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이종범이 일본에 진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계속 뛰었더라면…’. 일본야구에 적응하느라 애쓰다 좀 적응될 만 하니까 찾아온 부상들…. 물론 야구기록이 모든 선수에게 인생의 최고목표가 될 수는 없다. 선진야구에 뛰어든 사람은 나름대로의 뜻과 포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라운드에서 전보다는 빛을 내지 못하는 이종범을 바라보며 국내에서 줄곧 뛰었더라면 지금의 양준혁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록에 있어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 나가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막연한 아쉬움은 좀처럼 거둬 지지가 않는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