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의 좌완 기대주였던 투수 신재웅(25)이 FA를 선언한 박명환의 LG 이적에 따른 보상선수로 2007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2차지명 3번으로 LG에 입단한 신재웅은 2006 시즌을 대비한 미국 전지훈련중 볼티모어의 리오 마조니 투수코치로부터 ‘마조니 주니어’라는 애칭을 받았을 정도로 그 가능성을 대단히 높게 평가 받았던 투수다.
입단 첫 해(2005)에는 13⅓ 이닝을 던지며 1승1패를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2006 시즌에는 52⅔ 이닝으로 등판기회가 대폭 늘어났고, 7점대가 넘던 방어율을 4점대로 낮추는 등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더 큰 무게가 실린 투수라고 할 수 있다.
신재웅의 외관상 2006 시즌 기록은 전년에 비해 더 나아진 것이 없는 1승2패.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중간계투로 나와 얻었던 프로 첫 승(2⅓ 이닝 투구)과는 비교할 수 없는 1승이었다.
8월 11일, 한화와의 잠실 홈경기에서 프로 입단 후 첫 선발등판(통산 43번째 등판)의 기회를 얻은 신재웅은 9회에 접어들기까지 노히트노런을 유지하며 전혀 예상 밖의 호투로 1피안타 완봉승을 기록, 팬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프로 첫 선발등판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작성한 사례가 전무한 상태에서 7회를 마치자 LG의 팀 관계자들은 눈앞에 바짝 다가온 신재웅의 대기록 탄생에 ‘자칫 누가 될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점점 부풀어오르는 흥분과 설렘을 감추지는 못했다.
“가능할까요?”
6-0으로 앞서 있던 8회초, 양승호 감독대행은 수비를 강화하기 위한 선수교체를 단행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야구 속설에 이런 말이 있다.‘야수가 바뀌면 꼭 그 야수에게 첫 타구가 날아간다’ 라는 말이다. (반드시 일치하는 말은 아니지만 바뀌어 새로 들어온 야수 앞으로 첫 타구가 날아가는 경우를 적잖이 보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허황된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날 이 속설이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LG는 새로운 3루수로 박기남을 기용했는데, 8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한화 이범호의 땅볼이 바로 3루수 앞으로 굴러갔던 것이다. 박기남은 앞으로 대시하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타구를 기다리다, 왼손 글러브 옆으로 그만 타구를 빠뜨리고 말았다.
타구의 바운드 측정을 잘못한 결과였다. 글러브도 닿지 않은 채 빠져나간 공…. 주사위는 기록원에게 넘겨지고 말았다.
평소 ‘제발 내게는 이런 상황만큼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 오던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이 경기의 공식기록원이었던 필자는 당시 이 타구에 대해 오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투수의 노히트노런이 목전에 와 있는 상황에서 평범해 보이는 내야땅볼을 야수가 손도 대지 못하고 뒤로 흘렸다 해서 안타로 판정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규칙 바운드가 확연하지 않은 이상은.
신재웅에게는 한번의 고비가 더 있었다.
8회 초 1사 주자 1루에서, 2루수 방향으로 강습타구가 날아갔는데 2루수 이종열이 왼쪽으로 쏜살같이 지나는 타구를 글러브로 낚아채 듯 잡아내 병살로 연결시킨 일이었다. 대개 노히트노런의 고비는 7~8회에 있기 마련이어서, 이 고비를 넘긴 신재웅의 대기록 가능성은 수위가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게다가 9회초 한화의 마지막 공격은 하위 타순부터였다.
프로 새내기나 다름없는 신재웅에게 주는 선물로는 너무 크다고 생각했을까. 9회초 선두 신경현의 타구가 외야로 뻗어나갔고, 좌익수 박용택 앞에서 바운드 되는 순간, 행운의 여신은 등을 돌리고 말았다. 결과는 1피안타 완봉승.
신재웅은 이후 몇 번의 등판에서 나름대로 호투하기도 했지만 끝내 승수를 추가하는 데는 실패한 채, 시즌 1승만으로 2006 시즌을 마무리해야 했다.‘노히트노런급의 엄청난 1승'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어디서 본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이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 데자뷰(deja vu) 기록(?)이라고나 할까.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 기록 수립자로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는 방수원(해태). 그는 1984년 어린이날, 삼미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지만, 그 해 방수원이 기록한 승리는 그것이 전부(1승8패)였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