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시즌 손민한을 내세워 정규리그 MVP를 가져간 롯데가 2006년에는 이대호(25)를 MVP후보로 올리며 2년 연속 시즌 MVP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시즌 내내 프로야구의 기존 판도를 뒤흔들다시피 한 괴물급 신인 투수 류현진(한화)에게 근소한 표차(47:35)로 밀리며 구단 통산 3번째 MVP 배출의 꿈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구단 성적이 주는 핸디캡 때문에 2005년 손민한이 MVP 후보에 올랐을 당시, 팀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한 MVP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견해도 있었다. 그렇지만 손민한은 시즌 내내 고군분투하며 4년 연속 최하위를 맴돌던 롯데를 5위까지 끌어올린 팀 공헌도를 높이 평가 받아 강력한 경쟁자였던 우승팀 삼성의 오승환을 비교적 여유있게 물리치고 MVP에 오를 수 있었다.
1년 후(2006) 롯데는 또다시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하는 아픔(6년연속)을 겪었다. 마치 전년도의 재판인 듯, 이번에도 타격 3관왕을 차지한 이대호가 MVP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이대호는 1984년 이만수(삼성)가 타격 3관왕을 차지한 이후, 무려 23년이나 걸려 어렵게 탄생한 순도 높은 타격 3관왕(타율 .336, 26홈런, 88타점)이었음에도 MVP에 오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전년도에 18승 투수를 내세워 MVP를 차지한 롯데였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로 18승 투수에게 발목이 잡힌 것이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똑같은데 왜 손민한은 됐고 이대호는 안됐던 것일까? 역시 투수부문 3관왕을 차지한 류현진의 벽이 너무 높아서였을까? 곰곰히 되짚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 치러지는 MVP 투표의 시기적 이유로 인해, 후보로 오른 선수의 포스트시즌 성적이 여의치 못했을 경우, 물을 먹는 일을 가끔 보아왔던 전례를 생각해 볼 때, 류현진이 2006 포스트시즌에서 시즌 때 만큼의 인상깊은 투구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이대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또한 같은 3관왕이라도 투수쪽보다는 아무래도 타자쪽이 좀더 각광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류현진의 상대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대호가 MVP에 오르지 못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성적이 아닌, 성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즉 이대호의 기록변동 그래프가 팀 성적과 궤를 맞추지 못하고 타이밍상 서로 어긋났던 점이 표심에 영향을 준 것이다.
롯데는 2006 시즌 개막 후, 채 두 달을 넘기기도 전인 5월말에 이미 12승 27패를 기록, 리그 최하위로 내몰리며 팬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바로 이 시기에 시즌 초반 반짝세를 보이던 이대호의 타격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4월말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타율이 5월 하순에는 2할 7푼대까지 떨어지는 등 슬럼프 기미까지 보였고, 호세와 더불어 중심타선을 구성하고 있던 선수라는 점에서 팀은 더더욱 힘을 받을 수 없었다.
6월 들어 페이스를 되찾은 이대호는 그때까지 6개에 머물던 홈런수를 황새 걸음으로 늘려가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이미 깊이 가라앉아버린 팀 순위는 좀처럼 떠오르질 못했다.
결과적으로 팀의 포스트시즌 탈락이 이미 시즌 전반기중 확정단계에 접어든 이후에야 이대호의 성적이 뒤늦은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점이 발군의 성적임에도 주목받지 못했다. 투수 3관왕보다 상대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깃을 가지고서도 MVP로 날아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써 1984년 이만수가 타격 3관왕을 차지하고서도 타이틀 획득 과정의 잡음으로 인해 MVP 경쟁에서 밀려난 것을 포함, 한국 프로야구는 타격 3관왕이 두 번 모두 MVP에 오르지 못하는 묘한 역사를 갖게 되었다.
참고로 타격 3관왕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1967년 칼 야스트르젬스키(보스턴)이후 40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있으며, 반세기가 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센트럴과 퍼시픽 양 리그를 모두 합해 불과 6명만이 기록달성에 성공했을 만큼 대단히 어려운 기록이다.
이번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대표팀 부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제몫을 다하며 재야의 MVP로 만족해야 했던 이대호가 다음 시즌엔 못다 이룬 정규리그 MVP의 꿈을 이룰 수 있을 지….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뒤, 거포 부재에 시름하는 한국 프로야구판에 메가톤급 타자로서의 계보를 이을 가능성을 보여준 이대호. 그가 만들어 낼 2007 시즌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