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소 없는 찐빵’. 형체는 갖추었는데 결정적으로 있어야 할 내용물이 빠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2007 시범경기를 앞두고 올해도 레코드 북이 발간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찐빵처럼 두터워져 가는 레코드 북을 바라보며, 26살 먹은 한국프로야구의 기록에 관한 역사가 그 깊이를 점점 더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배가 불러오는 듯 하다. 그런데 기록집을 아무리 들춰봐도 보이지 않는 기록이 한가지 있는데, 바로 퍼펙트 경기(Perfect game)다. 찐빵으로 치자면 ‘팥소’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진정한 찐빵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팥소가 지금 우리 프로야구 기록사에는 없는 것이다.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17차례(1880년 6월12일 워체스터의 리 리치몬드 이후), 반세기가 지난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모두 15차례(1950년 6월 28일 요미우리의 후지모토 히데오 이후)의 퍼펙트 경기가 기록됐지만, ‘역사가 짧아서일까?’ 25년이라는 4반세기의 격동을 치러낸 한국 프로야구에선 아직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퍼펙트 경기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한화의 정민철(35) 투수였다. 1997년 5월 23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와 OB의 경기에서 정민철은 8회 1사까지 22명의 타자를 모두 완벽하게 틀어막았지만, 23번째 타자였던 심정수를 포수 강인권이 투스트라이크 뒤 헛스윙한 투구를 뒤로 빠뜨려(패스트볼) 낫아웃으로 출루시키는 바람에 퍼펙트 경기를 놓친 일이다. 정민철은 이후 나머지 5타자를 잘 막아냈지만 노히트노런이라는 차선의 대기록(?)에 만족해야 했다. 또 한번의 아쉬운 순간은 그 보다 약10년 전쯤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4월 17일, 빙그레와 해태의 광주경기에서 이동석(빙그레)은 선동렬과 맞대결을 벌이며 6회까지 퍼펙트 경기를 이어나갔지만, 강정길과 장종훈의 실책 2개로 타자주자를 1루에 내보내 대기록을 놓쳤다. 이동석은 이날 경기에서 4사구 없이 야수실책 2개만을 허용한 끝에 1대0 승리를 거두며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작성했는데, 총 10차례의 노히트노런 중에서 무4사구 노히트노런 기록은 정민철과 이동석, 단 2명뿐이다. 특히 이동석은 당대 내로라하던 이순철, 김종모, 김성한, 김봉연, 김준환, 한대화, 차영화, 장채근 등으로 구성된 막강 해태 타선을 상대로 세운 대기록이었다는 점에서 지금 들여다봐도 대단한 호투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1991년 빙그레와 해태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나왔던 송진우의 8회 2사까지의 퍼펙트 행진에 관한 일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이는 정규리그가 아닌 포스트시즌 경기라 공식기록 리스트에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로 묻어두기로 한다. 필자는 지금도 데이비드 콘(뉴욕 양키스,1999년 7월 18일)이 홈에서 몬트리올을 상대로 퍼펙트 경기를 달성한 순간, 마운드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머리에 얹은 채,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기록을 달성한 것이 사실입니까?’ 라고 하늘에 묻는 듯,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포수가 달려와 안기도록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르던 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유일무이한 월드시리즈 퍼펙트 경기(1956년 10월 8일) 기록 소유자인 돈 라센과 당시 포수였던 요기 베라(뉴욕 양키스), 두 노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가 대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어떤 영화제의 ‘레드 카펫’이 주는 느낌보다도 화려하고 근사한 장식이었고, 이 모든 현실이 그저 부럽기만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퍼펙트 경기’가 불러다 줄 환호성과 희열을 다른나라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한번쯤 직접 느껴보고 싶은데 그 날은 과연 언제쯤일런지…. 투수의 분업화다 보호다 해서 완투형 투수는 점점 줄어들고, 마운드 높이는 낮아지고, 타자들의 배팅파워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등 퍼펙트 경기가 탄생할 만한 주변여건은 더욱 나빠져 가고 있지만, ‘화룡점정’(畵龍點睛)만을 남겨둔 채 붓을 들고만 있어야 하는 화공의 마지막 한 점 붓질을 이젠 보고 싶다. 아주 어릴 적, 해외에 입양되어 나간 우리의 핏줄들이 이제는 친부모를 한번쯤 만나고 싶지 않은 지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질문에 뼈아프게 던지던 한마디가 자막처럼 떠오른다.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기억에 없는 것을 그리워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한국프로야구에 있어 퍼펙트 경기는 팬들의 기억에 없다. 하지만 기억에 없는 그 ‘퍼펙트 경기’가 오늘 참 많이도 그립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