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희생번트와 재미있는 야구, 물과 기름?
OSEN 기자
발행 2007.04.16 13: 46

오목은 같은 색깔의 바둑알 다섯 개를 징검다리처럼 연속해서 먼저 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오목을 두다 보면 상대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방어를 뚫고 어떻게 하면 자기 바둑알을 끊어짐없이 이어나갈까 궁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기 바둑알은 쳐다보지도 않고 상대의 바둑알 두 개만 나란히 보이면 맥을 끊는다며 무조건 쫓아가 길을 막아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오목이 더 재미있을까? 당연 수비지향적인 후자쪽이 재미는 없다. 갑자기 오목얘기를 꺼내든 이유는 야구경기를 끌어가는 감독의 취향이 오목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 4월8일, 삼성과 두산의 대구경기에서는 팀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양준혁(삼성)이 희생번트를 대는 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다. 프로생활 15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양준혁으로선 개인통산 11번째 희생번트였다. 수치상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장면이었는데, 대스타도 팀을 위해 희생번트를 댄다는 사실이 아주 인상적이었는지 많은 홈 팬들로부터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상당수의 팬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상반된 반응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날 양준혁이 기록한 희생번트의 당위성에 대해선 팀이나 선수개인의 처지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옳다 그르다’로 가름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만 양준혁이 번트를 시도한 시점이 삼성이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경기 초반인 3회였다는 점이 많은 팬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으로 다가섰던 모양이다. 게다가 2년 연속 우승을 일궈내 상대적으로 팀 성적에 대한 부담이 적은 세칭 ‘있는 집’ 삼성에서 나왔다는 것이 더욱 자극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희생번트를 주무기 삼아 경기를 풀어가려는 감독들의 잦은 시도에 팬들이 느껴야 했던 아쉬움과 짜증의 화살은 사실 어제 오늘만의 얘기는 아니다. 과거에도 희생번트는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주범’으로 툭하면 내몰려왔다. 그러나 마냥 소심하고 째째해보이는 희생번트는 사실 야구경기가 가장 자랑스럽게 말하는 희생정신의 결정체다. 일선 감독들이 취임일성으로 그 어떤 덕목보다도 우선 순위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이 팀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다. 그런데 이처럼 고결한 정신을 담고 있는 희생번트가 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커다란 이유 두 가지는 예상된 결과와 남발 때문이다. 우선 희생번트는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무너뜨리게 만든다. 일부에서는 번트 대처과정에서 나오는 수비 포메이션이나 수비실책도 볼거리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일반 팬들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다. 다음은 잦은 남발이다. 시도 때도 없이 기록되는 희생번트는 경기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그러면 팬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왜 굳이 희생번트를 고집할까? 우선 주자를 단타 하나면 득점이 가능한 스코어링 포지션(2루나 3루)에 갖다 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상대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게 된다는 것, 덤으로 병살을 당할 확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것 등이 번트로 얻게 되는 반사이익들이다. 이 모든 의도는 점수로 연결될 수 있는 확률을 가능한 한 높이고, 달아날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멀리 달아나, 궁극적으로는 경기를 이기기 위한 것에 모아진다. 모 감독은 한 마디로 이런 정의를 내렸다.‘이기는 경기가 재미있는 것이다’라고. 틀린 말이 아니다. 팬들은 자신을 응원하는 팀이 이겨야 재미가 있다. 경기내용이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결과가 ‘패’라면 뭔가 허전한 구석이 남게 된다.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팀의 경기에 관중이 들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구단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을 잔뜩 짊어진 감독으로서는 승리가 먼저다. 재미있는 야구는 한 치 건너 두 치며, 유토피아(이상향)다. 위험한 승리보다는 안전한 승리를 원한다. 흥미로운 야구, 손에 땀나는 승부를 팬들은 원하지만, 감독은 안전한 야구, 마음편한 야구를 꿈꾼다. 여기에서 성적과 재미있는 야구의 충돌이 일어난다. 어떤 구단은 성적이 뒷받침되는데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우리 팀의 경기내용이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 말은 팀은 안정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전개가 팬들이 미리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식상된 야구의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기기는 하지만 팬들이 열광할 수 있는 의외성과 다양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기는 경기지만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기록의 결과물을 발표한 적이 있다. 번트를 이용해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갖다 놓고 공격하는 것이 정말로 득점확률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인지를 통계를 통해 조목조목 분석해 본 내용이었다. 일부를 인용해보면, 무사 1루에서 보내기 번트를 이용해 주자를 2루에 갖다 놓는 행위가 그냥 강공으로 밀어 부쳤던 경우보다 오히려 득점확률이 낮게 나타났다. 번트를 댔을 때가 37%, 강공은 45%의 득점성공률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즉 1사 2루의 만들어진 상황이 무사 1루보다 득점 성공률이 더 낮았다는 얘기다. 희생번트는 주자를 2루에 진루시킬 수 있는 이점은 있지만, 반대급부로 아웃 카운트 하나를 상대에게 헌납해야 하는 불리함도 함께 지닌 작전이다. 고작 3번의 아웃 이전에 득점을 만들어내야 하는 제한된 상황 아래에서 1번의 아웃기회를 스스로 자진 납세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팀에 크게 플러스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한 명의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무사 1루에서 번트를 사용하면 1점을 뽑자고 하는 것인데, 오히려 대량득점의 기회를 줄어들게 만든다” 라고. 아웃카운트와 득점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통계내용과 부합하는 말이다. 1980년대 후반, 김응룡(해태), 김영덕(빙그레), 강병철(롯데), 김성근(OB) 감독 등이 수장으로 있던 팀들의 ‘번트와 강공시 득점 성공률’을 뽑아본 적이 있다. 무사 1루의 상황을 놓고서다. 좋은 타자들을 보유했던 해태의 경우엔 번트보다 강공으로 밀어 부쳤을 때의 성공률이 10%이상 현저히 높게 나왔다. (희생번트 28%, 강공41%) 반면 번트를 비교적 선호했던 김영덕 감독의 경우엔 번트에 의한 득점 성공률이 오히려 10%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희생번트 32%, 강공 22%) 이런 분석을 곰곰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미진하지만 희생번트의 나아갈 길이 조금이나마 엿보이긴 한다. 희생번트를 1루주자를 무조건 2루에 진루시키기 위한 맹신적인 번트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각 팀이 가지고 있는 색깔에 따라 그 완급의 조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팅에 소질이 있는 선수에게는 설령 병살타의 위험이 있더라도 믿고 맡기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운 공격방법이 될 수 있다. ‘통계는 그저 통계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수치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평지 위로 툭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어색해 보이는 희생번트보다는 경기의 흐름에 녹아드는 희생번트가 되어야 팬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있다. ‘재미있는 야구’와 ‘희생번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것이 사실 무리한 욕심이긴 하지만, 오목에서처럼 바둑알 3개가 4개로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희생번트가 사용될 때 비로소 두 마리 토끼를 한데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