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히 멀리 날아가는 홈런 타구를 표현하는 말중에 ‘문샷(Moon shot)’이라는 표현이 있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달을 향해 쏜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이대호의 타구가 그랬다. 4월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현대전 1회말, 재기에 몸부림치는 정민태를 상대로 날린 이대호의 타구가 좌익수 머리위로 높게 떠오르자, 구장을 가득메운 롯데팬들의 시선은 달구경을 나온 사람들처럼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UFO처럼 공은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이대호의 홈런타구가 과연 ‘몇 미터나 날아갔을까?’ 하는 사실이었고, 그 처리는 고스란히 공식기록원의 몫으로 주어졌다. 장외홈런을 만날 때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갑갑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정리에 들어갔다. 우선 이대호가 친 홈런 타구는 라인드라이브성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하늘 높이 솟았다가 뚝 떨어지는 타구였다. 웬만한 힘을 가지고는 담장을 넘기기 힘든 궤적을 가진 타구였다. 따라서 야구장 밖으로 나갔다 하더라도 공이 떨어진 지점이 구장으로부터 멀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둘째, 사직구장은 무척 커보이지만 그라운드만 놓고 보면 광주나 대구보다도 외야 담장까지의 거리가 짧다. 외야 관중석을 포함한 전체적인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잠실보다는 작다. 셋째, 홈런 비거리 판단의 근거로 삼는 구장의 실거리 측량도표에 좌측 폴 방향 바깥 담장까지의 거리가 117m로 나와 있었다. 넷째, 이대호의 타구가 중견수 방향으로 갔더라면 과연 어디에 맞았을까 상상해보았다. 백스크린을 훌쩍 넘기기는 했겠지만 그렇다면 전광판 어디쯤에 맞았을까? 공식기록을 담당했던 필자는 이와 같은 나름의 판단을 근거로 처음 130m로 비거리를 발표했다.(막상 정하고 나니까 좀더 썼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어 중계 리플레이 화면으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TV 화면도 이 타구가 어느 정도 비거리로장외홈런이 되었는지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롯데의 홍보팀으로부터 한 가지 제보가 날아왔다. 경기장 밖으로 나간 것은 사실인데 바깥 담장 윗부분과 아래 사이로 뚫려있는 공간으로 타구가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설령 구장 밖으로 멀리 날아갔더라도 구장을 뚫고 나갔다는 것으로 간주, 그 이상의 비거리를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에는 담장 사이로 나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장외홈런이 맞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워낙 높이 떴다가 떨어진 타구라서 대충 방향만 감을 잡고 있던 터였는데….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옳을까? 평소 최장거리 홈런기록으로 의심해 볼 만한 장외홈런인 경우엔 되도록이면 기록원의 주먹구구식 비거리 판정에 의존하지 않고 실측을 하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필자는 롯데 측에 가능하다면 낙구지점을 확인해 실측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전달했다. 폴 연장선 바깥 담장이 117m이기 때문에 120m미터에서 출발해 측정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조언과 함께…. 만일 목격자 확보가 불가능해 낙구지점 파악을 할수 없게 되는 경우엔? 김동주의 장외홈런(2000년. 잠실구장)이 당시 150m로 인정되었다는 점과 사직이 잠실보다 전체적 구장규모가 조금 작다는 점을 근거로 140m 이상의 비거리는 힘들지 않겠냐는 의사를 내비쳤다. 경기가 중반에 이르렀을 때 쯤, 롯데는 홈런공을 주운 사람과 떨어진 지점을 목격했다는 청원경찰 두 명, 그리고 야구장안에서 바깥으로 떨어진 위치를 확인한 관중 한 명 등 모두 3명의 목격자를 확보했다는 소식을 알려왔고, 실측해 본 결과 151.2m가 나왔다고 했다. 예상치를 넘는 결과물이었다. 그렇더라도 증인이 확보된 실측결과를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사전에 전달해 놓았기 때문에 한국 프로야구 최장거리 홈런 타이기록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151m라는 단단위 수치 모두를 그대로 인정해 한국신기록으로 발표했으면 하는 롯데 측의 당연한 바람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김동주의 홈런타구가 실제 비거리는 152m(157m라는 주장도 있음)였는데도 불구하고 150m의 근사치로 공인된 전례를 무시하고 152m에 미달하는 이대호의 타구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최장거리 홈런신기록으로 인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롯데 측으로서는 아쉽지만 타이기록으로 만족하고 김동주의 예처럼 ‘사직구장 최초의 장외홈런’을 기억하는 기념물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 대신해 줄 것을 애원(?)했다. 이상이 이대호의 ‘비거리 150m 홈런 기록’에 관한 정정 해프닝의 전말이다. 그런데 이날 엉뚱하게도 10년 전인 1997년 양준혁(삼성)이 기록한 150m 최장거리 홈런 타이기록의 신빙성이 함께 도마 위에 올랐는데, 이는 양준혁 역시 최장거리 홈런을 기록한 구장이 이대호와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의 코너에서처럼 양준혁의 홈런 비거리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언젠간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대호의 장외홈런이라는 미끼에 걸려 생각보다 빨리 수면위로 딸려 올라오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양준혁의 홈런은 장외홈런도 아닌, 우익수쪽 담장 끝부분에 떨어진 것이었는데 떨어진 위치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구장밖으로 나갔더라면 어디에 떨어졌을까를 추측해서 결정한 비거리였다는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 최장거리 홈런기록으로 받아들이기엔 아무래도 미진한 구석이 있는 기록이었다. 그에 대한 가타부타 이야기는 차치하고, 어쨌든 난산 끝에 이대호가 합류함으로써 한국 프로야구 최장거리 홈런 기록 보유자는 백인천(1982. MBC 청룡. 동대문구장)을 포함 모두 4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출발선으로 돌려 앞으로 또다시 이런 유형의 장외홈런이 나와 실측한 결과, 152m를 넘는 비거리가 확인되었다면? 이 경우 실측결과를 100% 그대로 반영(기존의 5m 단위 측정 관례를 무시)해 최장거리 홈런 신기록으로 인정하는 문제를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참고로 미국은 미키 맨틀(1953. 뉴욕 양키스)의 172m(그리피스 스타디움), 일본은 알렉스 카브레라(2001. 세이부 라이온즈)의 170m(오사카돔)가 최장거리 홈런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롯데 자이언츠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