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홈런의 돌연변이, 그라운드 홈런
OSEN 기자
발행 2007.05.09 14: 02

장타력이 없으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록이 홈런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새로운 경기장을 짓게 되는 경우에 좌우 파울 폴대까지는 99m, 중앙 펜스까지는 121m를 초과해야 함을 규칙에 따로 명시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구장을 개조하는 경우에도 좌우 91m, 중앙 105m 이하로는 줄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야구규칙에 규정되어 있는 홈플레이트에서 페어지역 펜스까지의 최소 필요거리는 76m 이상이다) 하지만 공을 쳐서 펜스를 넘길만한 힘이 없더라도 홈런은 누구나 기록할 수 있다. 바로 '그라운드 홈런(Ground home run)'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홈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당연히 정식홈런과 똑같이 취급된다. 과거 '런닝홈런'으로 많이 불리기도 했지만 정확한 표현은 인사이드 더 파크홈런(Inside the park homerun)이다. 기록법에서도 전에는 런닝을 뜻하는 약자인 'R'을 사용했었지만, 지금은 'GH'로 표기한다. 야구 경기에서 그라운드 홈런이라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아무리 좌, 우중간이나 선상으로 빠지는 타구를 날렸다 하더라도 타자주자의 자력으로 최대한 진루할 수 있는 곳은 3루까지가 한계다. 그럼에도 간간이 그라운드 홈런이 기록되는 것은 수비측의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가 그 주요인이다. 펜스를 넘기지 못한 타구가 그라운드 홈런으로 둔갑하기 위해선 몇 가지 멍석이 필요하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외야수가 안타성 플라이타구를 노바운드로 잡기 위해 달려들다 뒤로 빠뜨리는 경우다. 공식기록에서는 안타성 타구를 다이렉트로 잡기 위해 수비하다 실패하는 것은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 안타성 타구가 단타성인지 장타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음은 펜스에 닿은 타구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디플렉트되는 바람에 외야수가 이를 쫓아다니느라 제대로 수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 밖에도 외야수끼리 서로 충돌하거나, 얼마 전 KIA 타이거즈의 이재주(34)의 경우(5월1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보듯 타구를 쫓아간 외야수가 펜스에 부딪치며 부상을 당하는 것 등으로, 한동안 아무도 타구를 처리하지 못하며 공황상태에 빠져버리는 것들이 그라운드 홈런을 가능케하는 요인들이다. 이재주의 타구는 중견수 키를 넘어가는 것이었는데, 롯데의 중견수 김주찬이 펜스 가까이까지 달려가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치며 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한참동안 타구가 방치 상태에 놓인 틈을 타서 기록된 것이다. 덕분에 발이 그다지 빠르지 않은 이재주가 데뷔 후 처음으로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통산 63호째)할 수 있었다. 당시 이재주는 3루쯤에서 멈춰서려는 듯 잠시 속도를 줄였지만 정황상 홈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김종윤 3루 주루코치의 계속된 팔동작을 보고 나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까지 감행한 끝에 간발의 차로 홈에서 세이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열거한 돌발변수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또 하나 있다. 1994년 태평양의 이희성이 기록(수원)한 그라운드 홈런은 그 원인이 참으로 허망하다. 타구가 좌익선상을 타고 흘렀는데 수비수들이 지레 파울타구로 판단해 수비에 나서지 않았다가 3루심의 예상을 뒤엎는 페어선언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타구를 쫓아가는 바람에 타자주자에게 홈까지 허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장황한 이름을 가진 그라운드 홈런이라는 진기록은 한 시즌 평균 2.5개 정도 기록되지만 1983~84, 1987, 1995년엔 단 한차례도 기록되지 않았다. 반면 가장 많이 일어났던 해는 1994년으로 9개다. 상대를 맥빠지게 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는 지,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한 팀의 승률은 무려 7할4푼이나 된다. 그라운드 홈런으로 만루홈런을 기록한 경우는 두 번, 1988년 고원부(빙그레, 청주)와 1992년 정경훈(삼성,사직)이 각각 기록했다. 가장 극적이라 할수 있는 끝내기 홈런을 그라운드 홈런으로 장식한 경우는 아직 없다. 그라운드 홈런이 끝내기 홈런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타자자신의 득점이 반드시 결승점이 되어야 한다는 극히 제한된 전제 상황이 기록탄생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9회 말 2점 차 뒤진 주자 만루라고 할 때, 끝내기 그라운드 홈런은 나올 수 없다. 1루주자가 득점하는 순간, 경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타자주자의 득점은 무용지물이 된다. (일반적인 끝내기 홈런이라면 점수의 성격에 관계없이 모두 인정된다) 한편 그라운드 홈런에 관한 한, 롯데는 타구단의 추종을 불허한다. 빈도수에서 볼 때 지금까지 기록된 총 63개의 그라운드 홈런중에서 롯데가 기록한 것이 무려 20차례. 특히 롯데의 김응국은 3차례나 그라운드 홈런타자 리스트에 이름을 남겨 개인 최다기록 보유자로 올라있다. 또한 롯데의 박기혁은 2004년 4월과 10월, 대전경기에서 문동환 투수를 상대로 한 시즌 두 차례의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해 냈는데, 두 번의 상황이 모두 기막힌 일치를 보였다는 점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다시 이재주의 그라운드 홈런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한꺼번에 너무 많은 루를 전력질주한 탓이었을까? 이재주는 슬라이딩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의 회전근을 다쳐 다음 타석에서 대타로 교체 되었다. 그라운드 홈런을 포함해 앞선 타석에서 단타와 2루타를 모두 기록하고 있던 참이라 3루타만 보태면 싸이클링 히트를 기대해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예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이재주의 발로 3루타(개인통산 3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전혀 상상못했던 그라운드 홈런도 기록한 마당에 사람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여기에 특이한 인연 한가지를 더 추가한다. 당초 3루에 멈추려했던 이재주를 홈까지 그대로 돌린 김종윤 주루코치는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그라운드 홈런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프로원년인 1982년 10월6일, 해태의 외야수로 활약하던 당시 롯데와의 경기(광주)에서 제 1호 그라운드 홈런을 작성한 바 있다. 그리고 다음날, 어깨를 다친 이재주와 더불어 김종윤 주루코치의 모습 또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었는데…. 원인은 달랐지만 몸살감기로 묘하게도 이재주와 함께 다음 경기에 나란히 결장하는 인연까지 같이 하고 말았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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