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순위다툼이 치열했던 때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고 나면 팀 순위표가 요동을 치고 있는 2007 프로야구다. 마치 데드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팀들이 반타작 수치인 ‘승률 5할’의 언저리에 몰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근자에 경기를 이기고 지는 각 팀의 모양새를 보면 투수력보다는 각 팀 중심타자들의 당일 활약여부에 따라 울고 웃는 일이 한층 잦아진 느낌이다. 안정감 있는 경기운영을 바라는 코칭스태프의 처지에서는 그다지 달가운 현상이 아니겠지만 팬들로서는 흥미만점. 때문에 팀을 대표하는 주포의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5할 싸움에서 살아날 수 없게 돼버린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5월 11일, 롯데 자이언츠는 가장 먼저 중심타선에 메쓰를 댔다. 그 동안 중심타자 이대호를 뒤에서 떠받쳐왔던 호세를 퇴출시킨 것이다. 그 영향이었을까. 이대호는 호세가 떠난 뒤 타격페이스가 부쩍 둔화된 느낌이다. 개막 후 4월 한달 간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7개)에서 선두로 치고 나갔던 파죽지세는 오간 데 없다.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 않는 한, 상대는 이대호에게 정면승부를 걸어오지 않고 있다. 유인구를 던지다 걸려들지 않으면 볼넷으로 출루시키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당 안타 한 개를 쳐내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4사구는 경기당 2개를 훌쩍 넘어버렸다. 최근 5경기에서 이대호가 기록한 안타수는 겨우 4개. 반면 4사구는 10개나 된다. 24타석의 절반 가까이를 걸어나간 셈이다. 호세의 대체선수인 에두아르도 리오스(34)가 그 자리를 단단히 메우기 전까지는 당분간 고전할 태세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지금은 KIA 타이거스에 있지만 2001년 롯데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조경환(35)이다. 거포로 보기엔 외형상 상당히 작은 체구(176cm)임에도 타고난 손목 힘과 펀치력을 바탕으로 2001년 홈런 26개(7위), 타점 102개(3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일궈낸 바 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는 그의 프로 선수생활에 있어서 유일하게 3할대 타율을 기록(.303)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조경환이 그와 같이 뛰어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본인의 능력이 우선했겠지만, 타순상 조경환 앞뒤에 포진했던 박정태와 호세의 존재가 시너지 효과를 분출시켰다는 해석이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이승엽(삼성)의 56홈런도 이승엽의 뒤를 받치고 있던 마해영과 양준혁이 없었더라면 기록달성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일면 수긍이 간다. 산 넘어 산이라고, 이승엽을 비켜가면 뒤에 또 다른 거포가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승엽을 마냥 피해가면서 주자 수를 늘릴 수만 없었던 현실은 상대가 이승엽에게 정면승부를 걸어야 했던 충분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타자로서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최희섭(KIA)이 국내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40홈런을 때려낸 일명 ‘용병급’ 파워히터다. 매 경기 전 갖는 프리배팅에서 기존의 국내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장타력과 비거리를 과시하고 있는 그가 과연 실전에서도 그와 같은 괴력을 자주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팬들의 기대가 하늘에 닿고 있다. 하지만 최희섭 역시 건너야 하는 다리가 있다. 바로 상대의 기피다. 최희섭의 성적은 그의 능력으로만 올곧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처럼 현재 각 팀의 성적을 좌지우지하는 주포들에겐 악어새 노릇을 하는 주변 타자들의 선전과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팀을 대표하는 거포들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재미도 크지만, 한 발 더 들어가 악어새 구실을 맡고 있는 타자들의 분투에 주목해보자.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승률 5할을 내심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각 팀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어떤 악어새가 그 임무를 충실히 해내는지. 그 임무 수행의 잘잘못이 팀 주포의 성적뿐만아니라 곧 팀 순위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혼자서만 잘해선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 야구가 여타의 단체경기에 비해 개인경기의 성격이 짙다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개인경기가 아님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고 하겠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