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는 기록이나 성적과는 별개
OSEN 기자
발행 2007.06.01 12: 32

어쩌면 이렇게 대조적일까. 올 시즌 초반 불어닥친 야구열풍은 작년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전개와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006년 시즌을 앞두고 한국프로야구는 WBC 4강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등에 업고 야심찬 흥행몰이에 나섰지만 시즌 중반에 접어들 무렵, WBC의 후광은 오간 데 없이 툭하면 ‘그들만의 리그’라는 제목을 단 텅빈 스탠드 사진이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반면 올 시즌에 대한 전망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지난 겨울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참패, 그리고 시즌 벽두에 몰아닥친 현대의 운영난에 따른 리그 파행우려와 매각협상 과정의 난항 등으로 분위기는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각 팀이 서로 물고 물리는 대혼전과 신구 대형타자들의 홈런 경쟁, 웬만한 선수보다도 스타로서의 지명도가 훨씬 높은 김성근, 김재박 감독의 복귀와 이동, 봉중근과 최희섭을 비롯한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유턴, ‘헐크’ 이만수 코치의 근 10년만의 귀향 등이 버무려지면서 팬들의 관심을 한껏 끌어모은 덕에 야구열기가 일시에 되살아날 수 있었다. 증시에 비유하자면 호재가 줄을 이어 터진 격이다.
특히 최희섭의 KIA 입단은 타오르기 시작한 장작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 최희섭의 데뷔전이 열린 5월 19일, 잠실(두산 전)의 매진사례를 시작으로 26일엔 인천 문학경기장이 2년여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심지어는 아직 출장선수 엔트리(26명)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았던 이전에도 구장마다 평소의 두 배가 넘는 관중이 그를 보기위해 모여들곤 했다.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로 떠난 뒤, 대형 스타부재에 목말라하던 팬들의 갈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1경기 3홈런(2005), 3경기 6홈런(2005,6,12~14), 통산 40홈런 그리고 WBC 미국전에서 터뜨렸던 3점홈런등의 굵직한 기억들은 196cm, 100kg이 넘는 외형만큼이나 그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부풀려 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단 몇 경기만에 최희섭이 2군으로 내려가자 KIA전을 찾는 관중이 다시 예년 수준으로 떨어지는 기색이다. 최희섭 모형이라도 갖다놔야지 안되겠다는 팀 관계자의 농담섞인 푸념소리도 들린다.
팬이 없는 프로스포츠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프로스포츠 기구들의 행정과 업무는 팬 위주로 이루어지며, 일의 우선순위에 있어서도 최우선 고려대상은 팬들이 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게 만들고, 팀을 성원하는 팬층을 보다 넓히기 위해 일년내내 구단은 머리를 싸매고 묘수를 찾기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와 같은 각고의 노력들이 큰 결실을 맺는데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로 프랜차이즈 스타의 유무다.
선수가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잡기 위해선 해당 선수의 뛰어난 성적이 먼저 따라야 하고, 오랜기간 팀에 대한 공헌도도 있어야 하며, 팬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성과 좋은 이미지까지도 곁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고비가 오는데 바로 선수 말년이다. 전성기를 지난 기량, 연봉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성적, 팀은 세대교체도 해야 하고. 하지만 그를 따르는 팬들은 많고, 구단의 고민은 깊어간다.
프로구단이 명문으로 가는 길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우승, 즉 성적이며 또 다른 하나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얼마나 배출했고 보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중에서 보다 더 어렵고도 생명력이 긴 것은 후자쪽이다. 성적은 해마다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를 갖는다는 것은 의욕만으로 풀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그 희소성과 가치만큼, 프랜차이즈 스타를 관리하고 대우하는데 있어 구단의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 것은 이미 단순한 한 명의 선수차원을 넘어 팀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록이나 성적의 하향곡선 그래프라는 잣대를 가지고 재단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구단의 행복이며, 그런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팀은 물론 팬에게도 대단한 행운이다.
지난 5월 31일, 프로농구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한 농구선수가 타의로 팀을 옮기게 된 입단식 자리에서 착잡한 심경속에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눈물 짓는 모습을 지켜보며 종목을 막론하고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자리인지를 모두가 다시한번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많은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마등처럼 스쳤던 팀과 함께 한 영욕의 세월을 회상하며 진한 눈물을 흘렸던 여러 선수들의 마지막 모습(은퇴식)들이 하나둘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시카고 불스 왕조의 신화와도 같은 전설을 써내려 갔던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의 진한 포옹, 평생 라이벌로 경쟁을 펼쳤던 매직 존슨(LA레이커스)이 래리 버드(보스턴 셀틱스)의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던 모습, 선수생활 전체를 오로지 한 팀에서만 불사를 수 있었던 철인 칼립켄 주니어(볼티모어 오리올스), “오늘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던 루 게릭(뉴욕 양키스), 마이 웨이가 흐르는 가운데 잠실구장 마운드에 입을 맞췄던 OB의 박철순, 은퇴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힘없이 삼진을 당했지만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던 장종훈(한화)….
이러한 기억들은 팬들의 마음 깊이 그들과 구단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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