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의 스포츠 세상]'형님 먼저, 아우 먼저' 장충고 김경모, 경한 형제의 꿈
OSEN 기자
발행 2007.06.26 15: 24

제 14회 무등기 전국고교 야구대회가 지난 11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시작, 18일 막을 내렸다. 이 대회에서 지난해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를 제패했던 장충고가 광주 동성고를 2-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이병규의 출신학교인 장충고는 일단 든든한 마운드가 강점이다. 미국 프로야구 진출설이 모락모락 흘러나오고 있는 에이스 최원제(18. 3년)와 무등기에서 3게임에 등판, 19⅓이닝 동안 9탈삼진, 9피안타,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무등기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박민석 투수가 버티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내세우는 장충고의 저력은 빈틈 없는 짜임새로 무장한 내야를 손꼽을 수 있다.
26일부터 막을 올린 제 61회 황금사자기 고교대회를 누구보다 기다리는 형제가 있다. 바로 장충고 주전 2루수인 김경모(18. 3년)와 2학년의 좌익수 김경한 형제다. 둘은 무등기대회 우승의 일등 공신이다. 나란히 맹타를 휘두르며 대회 각종 타격부문 상위권에 올랐다.( 형 경모는 .389로 타격 6위, 동생 경한은 .429 로 타격 4위). 결승전 현장에서도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을 형제는 함께 했다.
6월18일 결승전이 있던 그날, 당일치기로 아들 응원차 광주 무등경기장을 찾은 부모의 기쁨도 딱 두 배, 아니 그 이상이었다.
초등학교3, 4학년에 각각 야구를 시작해 홍은중에서도 야구부원으로 함께했던 이 형제는 현재 장충고의 주전 3번과 8번 타순을 맡고 있다. 이 형제를 만난 것은 지난 20일 무등기 우승을 축하하는 학교 내 행사가 있은 후였다. 검게 그을린 경모, 경한 형제는 형제라고 하니까 형제구나 했지 느낌이나 첫 인상은 좀 달랐다.
형이 동생 같은 느낌, 동생이 형보다 으젓한 느낌이 뒤섞여 순간 순간 헷갈리기 일쑤였다.
“처음에 야구 시작할때요, 저희집이 중국집을 했었는데요. 그릇을 팔러 오는 아저씨가요 아빠에게 아들이 야구한다고 자랑을 해서요 아빠가 부러워서요 당장 테스트 받으러 가보자고 저를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야구를 시작했죠.”
형 경모는 그 당시에 저 혼자만 야구를 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한 살 터울인 동생도 그 다음해 형의 뒤를 이어 야구를 하게 되었다.
“동생은 타격이 좋아요. 이번 결승전에서도 아쉽게 수훈상을 놓쳤어요. 1-0으로 선취점을 올린 게 바로 경한이에요.”
바톤을 이어 경한이 말했다.
“그런데 1-1 동점이 되구요, 8회 말 선두타자로 나서면서 무조건 진루해야겠다 싶어 친 게 안타가 됐어요. 결국 홈을 밟아 득점해서 2-1로 이긴거예요. 수훈상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형은 도루상 받았거든요. 발 무지 빨라요.”
동생은 형을 자랑하고 형은 동생을 칭찬했다. 형 김경모는 현재 프로 8개 구단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선수이다. 무등기 대회에서 도루 8개를 실패없이 100% 성공시키며 빠른 발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수비에서도 재간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177cm, 71kg으로 순발력은 갖췄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조금 부족하다며 동생은 날카롭게 형을 분석했다.
“형이 욕심이 무지 많아요. 그래서 타격이 안되면 뒤에서 보면 수비할 때 고개를 자주 숙이거나 어깨가 쳐져 있어요. 야구란 게 매일 잘 될 수 없는 건데요, 너무 예민하게 작은 것에 자주 실망하고 또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 좀 안타까워요.”
그러고 보니 수비를 하는 동안 동생 경한이는 왼쪽 외야에서 틈틈이 2루수인 형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형의 일거수일투족에 그 누구보다 맘 졸이는 동생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뒷모습만 봐도 기분이나 컨디션을 단번에 알수 있다고 했다.
“형은 여자친구가 있을 때 오히려 야구를 잘해요. 그런데 부모님이 여자친구는 나중에 만나도 늦지 않는다고 해서 헤어져서 지금은 없거든요. 저요? 전 없어요.”
동생은 형의 실력이면 분명 프로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형이 요즘 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봐요. 예민해져가지고 집에서 티비 보다가도 뜸금없이 경한아, 나, 프로 갈 수 있겠니? 하고 물어요.”
부담이 크냐는 질문에 형 경모는 종합병원까지 다녀왔다며 일종의 고3 병이라고 설명했다. 소화도 안되고 잠도 안온다며 불안병이라고 진단이 나왔는데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주변에서 프로에 갈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히려 부담이 되구요. 솔직히 팀에서 제가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필자가 보엔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의 예민한 성격에 주변 기대에 대해 스스로를 조급하게 하는 초조함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저희 집 형편이 좋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형은 프로에 진출을 했으면 좋겠어요. 부모님들이 밤 늦게까지 저희 때문에 일하시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 맘이 아파요.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시는 엄마 아빠를 봐서라도 열심히 해야죠.”
동생 경한이는 형에 비해 자신은 아직 프로를 논할 실력이 아니라며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형과 동생, 닮은 점은 별로 없어 보여도 속일 수 없는 한 핏줄이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시기는 이미 중학교 졸업 후 지났다고 한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느끼게 된 건 둘이 그 어느 집안의 형제들과 비교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평범한 기본 우애를 갖고 있는 정도라고 여겨졌다. 서로 누가 더 잘치나 내기를 하며 경기에 나선다고 한다.
경쟁자지만 상대가 앞서도 결코 화가 나거나 심술이 나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클 수밖에 없는 건 형제라는 끈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형제가 나란히 주전으로 나와 우승을 한 선수는 없을 걸요? 전국대회에서요, 아니 무등기대회서는 있나 모르겠네요. 하하하.”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예사로운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더운 공기가 느껴지는 거리로 나왔을 때 둘은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는 고교생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PC 방 가려구요. 형은 저한테 게임에 지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니까요. 성격 이상해요 정말.”
대회가 끝난 뒤 오랜만에 맞는 휴식을 틈타 시간을 쪼개 학교 근처의 단골 PC 방을 향하는 형제의 뒷모습에서 과연 1년 뒤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 진다.
형제의 건승을 빈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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