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김성근 감독의 인해전술에 헷갈리는 구원승
OSEN 기자
발행 2007.08.31 15: 16

독주 속에 2003년 이후, 4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매직넘버 카운트다운을 목전에 둔 SK와이번스의 올 시즌 선수기용 패턴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인해전술(人海戰術)’이다. 투수기용의 인적 물량공세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타순에 있어서도 매일매일이 변화의 연속이다. 전날 4타수 4안타를 친 선수도 때론 다음날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될 정도다. 때문에 경기 전 타순 업데이트 처리에도 전날 저장해놓은 SK의 배팅오더는 늘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면서도 올스타전 베스트 10에 선정된 선수를 단 한 명도 배출해내지 못했고, 시즌이 끝나가는 종반임에도 투타에 걸친 개인 타이틀에 도전장을 내밀어 볼만한 강력한 후보 한명,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보다는 팀 성적에 ‘올인’한 결과다. 그런데 이러한 SK의 다량, 다변화된 선수운용 방식이 공식기록원을 아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바로 구원승리투수의 결정에 있어서 그렇다. SK의 경기당 등판 구원투수의 숫자는 평균 4명에 가깝다. 선발투수를 포함하면 평균적으로 매 경기 5명 가까운 투수가 마운드에 오른다는 얘기다. 특히나 선발투수가 승리투수 요건인 5회를 넘기지 못하고 일찍 마운드를 내려가는 날은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난다. 그렇다보니 구원승 결정에 있어 자연 도토리 키재기식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려니 여간 골치아픈 것이 아니다. 오래 전의 사례는 접어두고, 필자가 담당했던 최근 경기만 놓고 보더라도 공부로 삼을 수 있는 틈새가 한둘이 아니다. 지난 8월 5일, 삼성과의 대구경기에서 SK 선발 이한진은 4-2로 앞서 있던 4회 말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지만 구원투수들의 난조로 경기는 졸지에 4-6으로 역전, 계속된 2사 1, 2루 위기에서 SK는 이날 5번째 투수로 좌완 김영수를 올려 급한 불을 껐고, 돌아선 5회초에 경기를 8-6으로 재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6회 말에 접어들어 김영수는 볼넷 3개를 연속해서 내주며 무사만루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물러나 버렸다. 김영수에 이어 등판한 6번째 구원투수 송은범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겨냈고, 7회에 이어 8회에도 굳건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김영수의 투구회수는 1⅓이닝, 반면 송은범은 8회 무사 1루서 마운드를 내려가기까지 2이닝을 던진 상태였다. 구원승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리드시점(자기가 투구하는 동안 팀이 리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 먼저 나온 김영수에게 있었지만, 역전주자를 포함한 무사 만루를 만들어 놓고 내려간 것이 못내 걸렸다. 한편 송은범은 이날 승부의 분수령이기도 했던 이 위기를 완벽히 틀어막았고 투구이닝도 김영수보다 많았다는 점에서 저울의 무게추는 자꾸만 송은범을 향하려 하고 있었다. 다른 구장의 기록원에게도 자문을 구한 끝에 내린 결론은 김영수의 구원승. 리드시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고, 김영수 또한 위기상황에서 등판했다는 점이 참작되었다. 그리고 채 일주일도 안된 8월 10일, 이번에는 한화와의 문학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역시 SK가 4-1로 리드하던 5회초, 무사 주자 1, 2루에서 선발 이영욱을 마운드에서 과감히 내리고, 좌완 김경태를 올렸다. 김경태는 벤치의 기대대로 2명의 타자를 범퇴시킨 후 물러났고(⅔이닝), 김원형이 원포인트 릴리프로 나와 위기를 실점 없이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6회부터 윤길현이 등판, 7회 2사까지 던지고(1⅔이닝) 그 뒤를 정대현(1이닝)-가득염(⅓이닝)-조웅천(1이닝)의 순으로 이어나간 끝에 5-1로 리드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 장면에서도 일부는 김경태에게 구원승이 기록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결과는 윤길현의 구원승이었다. 김경태가 위기를 잘 넘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리드시점을 그 어느 구원투수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리드시점이 없는 투수들을 놓고 비교하게 되는 경우, 대개는 절대적으로 많은 투구이닝을 소화한 쪽에 구원승을 주게 된다. 김경태의 등판 시점이 일러 보이는 5회였다는 점도 감점요인이었다. 세이브나 홀드와는 달리 구원승의 결정에 있어서는 딱히 이거다라고 숫자로 못박아 놓은 틀은 없다. 직접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공식기록원이 재량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상식적인 범주는 존재한다. 하지만 선택에 있어 숫자가 갖는 통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기의 맥과 흐름에 맞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렵다. 때론 정말 판단이 힘든 경우를 만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갑갑한 마음을 털고 직접 팀과 접선(?)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과연 팀 내에서는 누구에게 더 비중을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다. 199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이 쌍방울 감독으로 재임(1996~1999)하던 시절이다. 그날 경기에서 구원승이 누구에게 주어졌는 지를 지레 판단한 덕아웃 기록원이 기록실에 확인하지 않고 감독에게 구원승이 누구인지를 잘못 짚어 보고 한 적이 있었다. 경기종료 후, 감독의 생각과는 달리 엉뚱한 투수에게 구원승이 주어지자, 이 일로 인해 당시 덕아웃 기록원은 김성근 감독에게 매서운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이후 달라진 풍경 하나가 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더 잡고 안잡고의 차이로 인해 구원승이 달라질 수 있는 애매한 시점이면 덕아웃 기록원이 다가와 기록실 문을 두드린다. 구원승을 얻으려면 최소한 어느 시점까지 던져야 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데, 일종의 합의(?)를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올 시즌 SK는 이러한 일로 기록실을 찾아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올 시즌 개인성적보다는 ‘팀 우승’이라는 대 명제에 정녕 ‘올인’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닐런지….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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