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유한준의 아찔한 앞지르기
OSEN 기자
발행 2007.09.11 14: 50

2007 포스트시즌 4강행을 위한 실가닥 같은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있는 LG의 최근 경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딱히 이해가 얽힌 팀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피가 마르고 입이 바싹 타 들어가는 느낌이다. 뭔가 될 듯하면서도 중요한 마지막 고비에서 야수들의 어이없는 실책에 발목을 잡히고 마는 불운이 거듭되고 있다. 지난 9월 4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3-7의 열세를 딛고 끈질긴 추격 끝에 기어이 동점까지 따라붙었지만 9회 말을 버텨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다. 운은 끝끝내 LG를 외면하고 말 것인가…. 가정이고 지난 이야기지만 4일 수원경기에서 현대 송지만(34)에게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허용해 7-8로 패했을 때의 상황(1사 만루)이 만일 2사 후였더라면 LG에 뜻밖의 행운이 찾아 들었을 수도 있었을, 반면 현대로서는 아찔했던 순간이 소리소문 없이 지나가 버린 일이 있다. 7-7 동점이던 1사 만루에서 송지만의 타구는 중견수 머리 위로 날아갔고, 잡혔을 경우에 대비해 3루주자 이택근(27)은 리터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2루주자 정성훈(27) 역시 2루에 붙어 있었는데, 타구의 궤적을 옆면에서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던 1루주자 유한준(26)은 잡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2루로 달렸다. 결국 타구는 중견수 뒤에 떨어졌고, 3루주자는 여유있게 천천히 걸어서 홈인. 8-7 현대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3루주자 이택근이 홈에 들어오기 전, 2-3루 간에서는 1루주자와 2루주자 사이에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미리 2루로 뛰었던 1루주자 유한준이 2루를 돌고난 뒤, 천천히 뛰던 2루주자 정성훈을 순간적으로 지나쳐버렸던 것이다.(야구규칙 용어로는 추월이며, 추월한 주자는 아웃이 된다) 깜짝 놀란 유한준은 얼른 정성훈 뒤로 다시 원위치. 이 시점은 3루주자가 아직 홈을 통과하기 이전이었다. 경기가 끝나는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판원에게 아웃을 선언 당하지는 않았지만, 1루주자 유한준이 경기가 끝났다는 생각만으로 선행주자의 위치파악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만일 위의 상황이 2사 후에 일어난 것이었다면 3루주자의 득점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중대한 주루 범실이었다. 앞지르는 순간(심판원의 아웃선언을 전제로 한다)이 3루주자의 득점 순간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안타라면 다른 주자들의 진루 역시 보장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쉬운데, 간단히 말해 안타에는 볼넷이나 사구처럼 안전 진루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안타성 타구를 쳤더라도 주자들이 주루플레이를 잘못하면 언제나 득점은 물론이고 안타 자체도 없었던 일이 될 소지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송지만의 경우엔 2사 후였더라도 안타기록은 살아있을 수 있다. 1루주자가 2루를 지난 상태에서 앞지르기 아웃이 된 것이기 때문에 주자가 포스아웃된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득점만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앞지르기 아웃의 시점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3루주자의 득점을 인정하도록 하는 예외 조항이 한가지가 있다. 바로 볼넷의 경우다. 가령 2사 만루에서 볼넷이 나왔을 경우, 타자주자를 포함한 루상의 어느 주자가 선행주자를 추월해 아웃으로 선언된 시점이 3루주자의 득점보다 빨랐다 하더라도 3루주자의 득점은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볼넷은 안타와는 달리 주자의 한 개의 루에 대한 안전진루권이 따라 붙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2사 만루에서 홈런을 친 타자주자가 1루를 지나 2루로 가는 과정에서 굼뜬 1루주자를 추월해 아웃이 되었다고 하자. 만일 3루주자가 이 추월 아웃 전에 홈을 밟지 못한 상태라면 득점과 타자의 기록은 어떻게 되겠는가? 추월에는 역추월이라는 것도 있다. 타자의 타구가 잡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뛰었던 주자들이, 타구가 야수에게 직접 잡히는 바람에 원래의 루로 돌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얽히는 주루미스를 말한다. 귀루 중에 2-3루간에서 함께 모여있던 2루주자가 1루주자를 역추월했다면 이때도 추월한 2루주자가 아웃일까? 그렇지 않다. 이때는 추월당한 1루주자가 아웃이 된다. 이는 추월했다는 주루행위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홈을 기준으로 볼 때 의당 홈에서 가깝게 있어야 할 주자의 순서가 뒤바뀌게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다. 따라서 역추월중에 비록 1루주자가 추월당한 꼴이지만 주자 위치의 그림만 놓고 보면 1루주자가 2루주자를 추월한 상태와 같기 때문에 추월한 2루주자 대신 1루주자를 아웃시키는 것이다. 안타도 그렇고 추월도 그 행위 하나만을 가지고 따지지 않는다. 그 관련규칙에는 이처럼 일정한 틀의 원리가 숨어있다. 복잡한 야구규칙이지만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와 원리를 해부해 나가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대부분 풀리게 된다. 앞서 냈던 문제의 답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아무리 홈런을 쳤더라도 홈런 역시 안전진루권이 아니다. 따라서 타자주자가 1루주자를 추월해 아웃된 순간에 3루주자의 득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득점은 인정받지 못한다. 타자의 기록은 1루를 지난 상태이므로 단타.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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