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두산 뚝심야구의 근원, 가공(可恐)할 주력
OSEN 기자
발행 2007.10.19 09: 39

빠르다는 것이 야구에서 이처럼 무섭게 보이기는 처음이다. 팀 내 발 빠른 한두 명의 선수가 내 집인 양,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다니는 것을 본적은 많았지만, 2007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이 보여준 뜀박질은 그 차원이 달랐다. 두산은 10월 14일 한화와의 잠실 첫 경기 1회말 공격부터 이종욱의 도루성공을 발판 삼아 쉽게 선취점을 뽑아냈고, 2-2 동점이던 2차전 3회말 1사 1, 2루(볼카운트 2-3)에선 ‘런 앤 히트’ 작전을 걸어 상대의 폭투 때 2루주자는 물론 1루주자까지 득점시키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1사 상태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자동 삼진아웃이 된 타자 최준석까지 경황없이 1루로 뛰쳐나간 정신없는 두산의 달음질야구는 중계방송 해설자까지 낫아웃 상황으로 착각하게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 정신없이 복잡했던 두산 주루플레이의 공식기록은 일단 스타트를 끊었던 2루주자 고영민과 1루주자 김동주의 더블스틸이 우선 기록되고, 그 다음 추가 진루는 투수 유원상의 폭투가 된다. 아울러 3루까지 달려온 김동주가 무방비 상태였던 홈으로 들어온 것은 포수의 악송구로 기록된다. 상황만큼이나 기록 역시 아주 복합적이다. 3차전에서도 두산은 멈출 줄 몰랐다. 2-0으로 앞서던 1회초 1사 1, 3루에서 6번 안경현의 1루수 파울플라이 아웃 때 설마 했던 예상을 깨고 발이 빠르지 않은 김동주까지 무턱대고(?) 홈으로 파고들며 득점에 성공, 상대의 전의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놓았다. 더욱이 김동주는 2차전 런 앤 히트 작전 때의 1루주자이기도 했는데, 두산의 달리기 야구가 비단 발이 빠른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팀 전체가 추구하는 패턴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시즌 중에도 두산은 갈수 있는 틈만 보이면 단 한 개의 루라도 더 진루하려는 시도와 행위를 계속해 온 팀이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으로 주루사도 많았지만 팀에선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냈다. 올해 8개 구단 중 두산이 최다 3루타(32개)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포수 채상병까지 우익수쪽 안타를 치고 3루까지 내쳐 달렸다가 한화의 중계플레이에 3루에서 아웃된 장면은 올 시즌 두산의 달리는 야구가 어떤 생각과 흐름을 깔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대변해 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두산의 빠른 야구가 플레이오프 들어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프로야구 최초로 한 팀 30도루 이상의 준족을 3명(이종욱 47도루, 고영민 36도루, 민병헌 30도루)이나 배출해냈고, 시즌 총 도루수에서도 161개로 2위 SK(136도루)를 크게 앞섰던 점, 도루 성공율에서도 7할3푼으로 100개 이상 도루를 기록한 팀(두산, 삼성, SK, LG) 중에서 가장 높았다는 점 등이 후한 점수를 받았던 것인데, 막상 포스트시즌에 들어와보니 그 위력이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초대형급이다. 웬만한 찬스에선 희생번트를 잘 시도하지 않는 김경문 감독의 뚝심야구도 따지고 들어가면 발 빠른 주자들이 있었기에 좀더 과감할 수 있었다. 번트를 이용해 주자를 1개 루 진루시키는 것 보다, 선수들의 기민한 주루플레이가 만들어내는 그 이상의 진루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밀어붙인 결과가 뚝심야구로 재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두산에 병살타라는 이름의 기록은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6월 24일 KIA전(잠실)에서 두산은 무려 6개의 병살타를 쳐내며 프로야구 한 팀 최다 병살타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낸 바 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두산은 4개의 병살타로 포스트시즌 팀 최다 병살타 타이기록을 세웠다. 특히나 이날은 같은 뚝심야구 동업자인 한화가 병살타 3개를 거드는 바람에 졸지에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병살타 신기록(종전 6개)에 팀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런데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중의 하나인 병살타 기록을 두산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병살이나 진루타 실패를 두려워해 번트를 사용하지 않는 반대급부로 병살타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 되는 부산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산 팬들 사이에서 이 부분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다. 이처럼 가능한 한, 선수 스스로가 해결하게 만들고, 결과보다 최선의 시도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온 분위기는 어린 선수들을 큰 무대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게 만들었다. 1차전 선발 라인업 중에서 포스트시즌 경험을 갖고 있던 선수는 김동주와 안경현 단 둘뿐. 나머지 7명의 선수 모두가 포스트시즌 경기를 처음 치러야 하는 상태(이대수, 2005년 수비경험)였다. 주전들 대부분의 큰 경기 경험이 전무하다는 바로 이 점을 두산의 유일한 약점으로 꼽았던 것인데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제 2007 한국시리즈는 1995년 두산의 전신(前身)인 OB와 롯데 전 이후 12년 만에 3만 관중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구장을 오가며 치르게 됐다. 한국시리즈에 바로 직행한 SK 역시 두산 못지 않게 빠른 팀이다. 야구장 조건이나 선수구성 상 매치가 엇비슷한 두 팀의 달리기 경쟁에서 어느 팀이 넘어지지 않고 결승선에 먼저 닿게 될 지, 두 팀이 펼쳐나갈 폭주시리즈(?)의 결과가 꽤나 궁금해진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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