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의 스포츠 세상]‘포스트 이형택’임규태의 무한질주
OSEN 기자
발행 2007.10.30 15: 58

임규태(26. 삼성증권). 그는 현재 남자테니스 한국 랭킹 2위이다(세계랭킹 277위) 임규태를 만난 것은 지난 10월 22일부터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 공원 내 테니스코트에서 열리고 있는 삼성증권배 국제 남자챌린저 테니스 대회 사흘째(24일) 복식1차전을 끝낸 직후였다. 주원홍(삼성증권배 챌린저대회 토너먼트 디렉터) 감독은 아직 열을 삭히지 못했다며 필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 “방금 끝난 복식 심판의 판정에 대해 좀 화가 나 있거든요.” 게임에서 진 선수를 만난다는 것은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처럼 가슴이 떨린다.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를 마친 경우는 상대를 진정 시키다 보면 이야기는 산으로 가게 된다. 절대 산으로 가면 안된다 다짐 하면서 그를 기다렸다. 사실 임규태를 만나고자 함은 이날의 복식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전날 단식 1회전의 뜻밖의 승리와 이번 대회에 출전소감을 듣기 위해서였다. “아쉽게 졌네요. 단식뿐만 아니라 복식에도 욕심이 있었나요?” 필자는 큰 키의 임규태를 올려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난 9월 국가대항전 월드그룹 플레이오프에서 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이형택과 함께 복식 출전의 결과를 소개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파트너인 케빈 김과 의욕적으로 욕심을 내봤다며 말끝을 흐렸다. 상대는 톱 시드를 배정 받은 태국 라티와타나 형제. “1-1 마지막 슈퍼 타이브레이크에서 세컨드 서브를 더블폴트 했는데 심판이 미스한 것 같아요. 캐빈 형이랑 잘 해보려고 했는데, 아쉬운데 할 수 없죠. 이제는 단식에 전념 할 겁니다.” 전날 단식 1회전에서 7번 시드의 바비 레이놀즈(117위. 미국)를 2시간 2분의 혈투 끝에 2-1(6-3, 2-6, 6-4)로 꺾고 파란을 일으킨 임규태는 이 승리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2회전 진출에 성공했다. 그에게 이번 1승은 100위권 초반대 선수에게 따낸 것이라 그 의미는 더했다. “늦은 시간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끝까지 응원해줘서 힘이 났어요. 그래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경기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기면 힘들지 않다는 거죠(웃음).” 조금 전까지 판정의 억울함으로 붉어졌던 얼굴 빛은 이내 사라졌다. 2회전 맞상대인 하렐레비(198위. 이스라엘)는 한때 세계 랭킹 30위까지 올랐던 만만치 않은 실력의 선수. 그를 상대로 어떤 자세로 경기에 임할 것임을 묻자 대뜸 한 단계 위인 8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작년엔 16강에서 형택이 형에게 졌는데요. 이번에 8강에 진출 하면 형택이 형이랑 맞붙게 대진이 짜졌어요. 일단 2회전이 고비인데 통과해서 형과 멋진 경기를 펼치고 싶어요.” 하지만 임규태의 바람은 다음날 이뤄지지 않았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형택도 탈락했다. 한마디로 이변이었다. 이형택(31. 삼성증권)은 25일 체코의 이보 미나르(161위)와의 2회전에서 0-2로 패하면서 5연패 달성을 이루지 못했고, 임규태 역시 하렐레비와 2시간 31분의 대혈투 끝에 0-2(4-6, 6-7)로 분패했다. 8회째를 맞이한 이번 대회는 이형택의, 이형택에 의한, 이형택을 위한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회 연속 출전해 6번의 우승과 한번의 준우승, 그리고 2003년도에는 단복식 석권기록도 갖고 있다. 초반 탈락으로 난감해진 것은 주최측과 국내 테니스 팬들이다. 세계랭킹 50위권내의 선수는 참가할 수 없는 챌린저 대회였기에 이형택을 와일드 카드로 출전시킨 주최측으로서는 흥행면이나 많은 상금(12만 5000달러)의 향방, 모든 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주원홍 감독은 “남자테니스의 경우 랭킹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그날의 컨디션으로 승패가 결정 될 만큼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임규태에게 ‘포스트 이형택’ 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우리나라의 포스트 이형택이 너무 많아요. 어린 선수들 가운데 잘하는 애들 많잖아요”라며 웃었다. ‘포스트 이형택’ 이라는 말 자체가 남발 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진정한 ‘포스트’는 자신이 아니겠냐는 반문 같기도 했고, 그냥 ‘임규태’로 불려지고 싶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택이 형은 제가 성장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게임의 흐름을 읽는 방법이라던가 저랑 스타일이 비슷하거든요. 윤(용일) 코치님은 정신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셨고, 올해 목표가 200위 진입입니다. 4주 연속 대회에 참가하는데 한번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올 초만 해도 세계랭킹 739위였던 임규태는 4번의 퓨쳐스대회 우승과 각종 챌린저대회 투어대회에 참가하면서 무려 500위 이상 순위를 끌어올려 놓았다. 국내 일인자 이형택은 물론이고 2007 US 오픈 우승자이자 4연패를 이룬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세계랭킹 1위)를 향해 무한 질주 중이다. 투어를 통해 포인트 올리는 재미에 쏙 빠진 그는 이제 26살.‘포스트 이형택’의 선두주자가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는‘포스트 임규태’로 불려질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 연말 안에 그가 목표로 정한 세계랭킹 200위권 진입이 꼭 실현 되길 바란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대한테니스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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