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악순환 탈출의 해결사, 김광현
OSEN 기자
발행 2007.11.10 13: 00

김광현(19. SK 와이번스)이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올해로 3번째 대회가 열리고 있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예선 첫 경기에서 김광현은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인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6⅔이닝 동안 사실상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뜻밖의 호투를 펼치며 한국팀의 코나미컵 대 일본 전 첫 승을 일궈냈다. 지난 2년간 삼성이 연이어 한국대표팀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2005년 첫 해엔 일본 우승팀이던 지바롯데 마린스에 2-6, 3-5로 패한 바 있고, 2006년에도 니혼햄 파이터스을 상대로 1-7 완패를 당했던 터여서,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은근히 약이 오르던 참이었는데, 김광현이 한국야구의 속 풀이를 시원스럽게 해냈다. 그런데 좀더 살펴보면 김광현이 끊어낸 것은 코나미컵 대 일본전 연패의 사슬 하나만은 아니다. 김광현은 이미 2007한국시리즈에서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사에 있어 이상하리만치 악순환이 거듭되던 왼손투수의 아픈 역사까지도 단칼에 잘라내 버렸던 것이다. 일반적 예상을 깨고 궁지에 몰렸던 SK의 4차전 선발로 좌완 김광현이 예고되었을 때, 문득 걱정(?)이 된 것은 ‘시즌 성적이 좋지 못했던 김광현’이 아니라 ‘왼손투수 김광현’ 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뇌리에는 학습효과라는 것이 있다. 그 동안 포스트시즌에서 결정적인 순간 눈물을 흘려야 했던 많은 왼손투수들에 대한 과거의 잠재된 기억들이 김광현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프로원년(1982년)의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이 3-4, 1점차로 뒤지던 9회초 2사 만루상황에서 김유동(OB)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고 눈물 짓던 삼성의 이선희. 1984년 삼성과 롯데의 한국시리즈 7차전, 삼성이 4-3으로 앞서던 8회초 1사 1, 2루에서 유두열(롯데)에게 역전 3점홈런을 얻어 맞은 삼성의 김일융. 1991년, 8회초 2사까지 퍼펙트 경기를 끌어나갔지만 볼 판정 하나에 흔들리며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일순간 무너져 내렸던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서의 송진우(빙그레). 1994년 LG와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양팀이 1-1로 팽팽하게 맞서던 연장 11회말, 그 때까지 공 141개를 던지며 고군분투하고도 결국 대타 김선진(LG)에게 끝내기 홈런을 내줘야 했던 태평양의 김홍집. 2002년 전력의 상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상대로 연일 선전을 거듭, 9회까지 9-6으로 리드하며 한국시리즈 7차전을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하던 순간, 이승엽(삼성)의 동점홈런(3점홈런)에 망연자실해야 했던 LG의 이상훈. 2006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 1-1이던 6회말 2사 만루에서 이현곤(KIA)에게 만루홈런을 내주던 한화의 류현진. 이상이 대표적 왼손투수들의 잔혹사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포스트시즌만 되면 마치 자기 세상을 만난 듯,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치고 다녔던 해태의 김정수와 같은 왼손투수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역사에 있어서 왼손투수들은 비극의 주인공역을 되풀이 해오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광현은 이러한 전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에이스인 리오스를 상대로 8회말 1사 때까지 1피안타 무실점의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선보이며 한국시리즈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이는 외형상 원점이자 2승 2패였을 뿐, 4차전은 사실상 SK 와이번스 우승의 분수령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경기였다. 류현진(한화)에게 필적할 만한 대형신인으로 온갖 기대를 한 몸에 받고 SK에 입단했지만 3승 7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던 루키 김광현. 2006년 4월, 입단식에서 당차게 밝혔던 신인왕과 매년 두 자릿수 승수의 꿈은 시작부터 한참 빗나간 셈이 되었지만, 타율은 낮아도 찬스에 강한 타자처럼, 큰 경기에 더욱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광현의 ‘해결사’로서의 능력을 거듭 확인했다는 점은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수확이라 하겠다. 가정이지만 만일 2007 한국시리즈가 최종전인 7차전까지 갔다고 했을 때, 김성근 감독은 7차전 선발투수로 누구를 기용했을 지, 지금도 궁금하다. 정상적인 로테이션이라 할 수 있는 4일을 쉬었던 3차전 선발 로마노였을까? 아니면 3일을 쉰 4차전 선발 좌완 김광현이었을까?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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