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바람이 제법‘이제 겨울입니다. 아세요?’ 라고 귀엣말을 전한다. 주변이 뻥 뚫려 있는 파주 국가대표축구팀트레이닝센터(NFC)의 날씨는 도심보다 몇 곱절 더 추웠다. 2007 여자대학생 축구클럽대회가 열린 11월 10일 NFC. 시작한지 몇 달 안된 팀부터 1년이 넘은 대학팀까지 총 10개팀의 여자축구 동아리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해 시작 때는 6개 팀이 참석했는데 이번엔 4개 팀이 늘었고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교수, 감독, 코치, 응원단까지 동행한 학교는 50명이 넘는 많은 인원도 있었다. 파릇파릇한 천연잔디구장에서 여학생의 공에 대한 집착과 웃음소리와 승리의 함성, 그리고 아쉬움이 묻은 탄식 등이 그라운드에 넘쳐 났고 추운 날씨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젊음의 열기를 맘껏 뿜어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운동회가 떠올랐다. 공을 쫒아 몰려다니는 모습이며 골키퍼의 엉거주춤한 수비자세, 헛발질도 간간이 나왔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유니폼도 보는 재미를 더했다. 뛴 선수나 지켜본 각 대학 응원단은 모두 잊혀지지 않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숙명여대와 동덕여대 두 팀이 결승전에 올랐는데 1-1 무승부로 전 후반이 끝난 뒤 숙명여대가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겨 작년 준우승에 이어 올해 우승컵을 거머줬다. 전 후반 각각 15분씩으로 다소 짧은 시간인 듯 보였지만 리그로 진행된 경기 스케줄 탓에 적어도 팀당 3~4게임을 뛰어야 했다. 처음 참가하는 학생도 꽤 있었는데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보면 순간적인 실수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옥에 티라고 여겨졌다. 날씨를 고려해 2주 전에 치렀어도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경기를 뛰는 학생들은 추위를 잊은 듯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던 남학생들도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필자는 목도리까지 준비하고 찾아 갔건만 감기기운 탓인지 추위를 심하게 느끼던 순간,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은 세 명의 선수가 나타났다. 이곳에 소집된 올림픽 축구국가대표선수 23명 가운데 송유걸(24. 인천유나이티드), 최철순(20. 전북현대), 정인환(21. 전북현대) 이었다. 올림픽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 5차전을 앞두고 지난 6일 소집되었다. 소집 5일째인 이날은 오전에 명지대와의 연습경기만이 짜여져 있었다. 샤워와 점심식사와 끝내고 슬슬 시끄러운 함성이 가득한 그라운드 쪽으로 이 세 명이 발길을 돌린 것이다. “경희대, 제 학교거든요. 물론 아는 사람은 없어요(웃음). 그래도 그냥 응원차 나왔어요. 숙소에 있어봤자 할 일도 없고 해서요.” 송유걸은 유쾌한 성격인 듯했다. “오늘 훈련은 없죠? 밖으로는 못나가고 달리 할 일이 없나 봐요?” 필자의 질문에 최철순은 추운 듯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그냥 훈련 없어도 운동만 생각하게 만들죠. 보세요. 그라운드만 덩그러니 있잖아요. 쉴 때도 운동장에서 쉬라는 거죠(웃음). 지금 다른 선수들은 TV 보거나 게임해요. 제 동생이 경희대 체대생이거든요. 여기 왔다면서 추우니까 입을 것 좀 가져다 달래서 심부름 나왔어요.” 그냥 나와 봤다는 최철순은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마치 오락실에서 게임중인 사람의 뒤쪽에 자리잡고 집중해 보는 아이처럼 웃음을 머금고 아쉬운 탄식을 섞어내며 뛰어 다니는 여자선수들을 몸놀림을 뚫어지게 지켜봤다. 간간이 유니폼의 숫자를 가리키며 “제, 7번, 어, 빈 공간을 찾네, 우와, 슛, 아 아깝다”라며 중계하듯 떠들며 관전했고 송유걸은 “생각보다 꽤 잘하네요. 이런 대회가 자주 열려서 여자들도 축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좋겠어요. 취지가 좋은 것 같아요”라며 지켜본 소감을 전했다. “지금 여기서 뛰고 있는 여자선수들과 같은 심정으로 축구를 하려고 노력해요. 제게 축구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좋아서 하는 만큼 최대한 즐길려고 합니다. 이번 우즈베키스탄전 부담이 되지만 편한 맘으로 뛸 생각입니다”라며 최철순은 며칠 후 출국을 앞두고 미리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여성 팬이 많아 보일 듯 한 송유걸에게‘혹시 여학생들이 와서 나와 본 것 아니예요’라고 묻자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경북대 물망초 동아리 팀의 선수 이하 코칭스태프에게 둘러싸인 채 환한 웃음을 머금고 단체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올림픽대표 3인방’은 훈련 없는 무료하고 지겨운 주말 오후 숙소를 벗어나 재미를 찾은 곳이 그들이 늘 뛰고 숨쉬는 운동장이었다. 축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축구를 통해 푸는 셈이다. ‘이번 예선의 주전을 꿰차야지, 골 넣어야지, 이기고 돌아와야지’등의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숱한 고민과 숙제를 잠시 접어두고 그냥 이유없이 마냥 좋은 ‘축구’경기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참 인상적이였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올림픽 축구국가대표팀 문지기 송유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