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인정받을 수 없는 기록들
OSEN 기자
발행 2007.11.20 10: 42

배리 본즈(43)가 개인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인 756호 홈런을 쳐내며 웬만해선 깨기 힘들 것 같았던 행크 애런의 755개를 딛고 넘어섰던 지난 8월, 금세기에 마주친 화려한 홈런 쇼에 축제로 가득했을 그들의 잔치는 언론과 대다수 야구팬들의 싸늘한 시선에 빛을 잃어야 했다. 다른 기록도 아니고 야구기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홈런 신기록임에도 이처럼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던 이유는 바로 배리 본즈의 약물복용(스테로이드) 혐의 때문이었다. 팬들은 배리 본즈의 홈런 신기록이 그의 올곧은 능력이 아니라, 금지약물을 장기간 복용해 신체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록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팬들은 배리 본즈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생각으로만 접어두지는 않았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사족이 전혀 필요치 않는 기발한 생각을 야구장으로 끌고 나왔는데, 바로 별표(*)였다. 배리 본즈가 홈런을 날리는 순간마다, 외야석 이곳 저곳에 떠오른 별들을 보며 처음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별에 담긴 의미(정식기록이 아닌 참고기록으로만 인정한다)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별표는 배리 본즈 한 사람을 넘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는 마치 격언처럼 떠도는 기록에 관한 유명한 문구가 하나 있다. ‘비난은 짧고 기록은 영원하다’ 라는 말이다. 과거 타이틀 경쟁에서 일부 감독이 소속팀의 선수를 1위 자리에 앉히려고 사용한 편법에 대해 언론이 정당하지 못한 길을 택했다는 비난을 쏟아 붓자, 이에 대한 일종의 변명적인 차원에서 등장시켰던 말이다. 요즘도 시즌 말미에 접어들면 실리적인 면에서 이 말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록의 경기라 불리는 야구에서 기록을 세우고도 정당한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노 게임에 의해서다. 정식경기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이닝 5회를 넘기지 못한 상태에서 비로 인해 경기를 더 이상 치르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에 적용되는 규칙으로서, 선수가 세운 모든 행위의 기록이 원천적 무효로 처리된다. 올 시즌 복귀 후 시즌 첫 홈런이자 만루홈런을 때려내고도 노 게임이 선언되는 바람에 홈런기록이 송두리째 비에 씻겨 내려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영우(34. 한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두 번째는 기록이 변형되는 경우다. 홈런을 치고도 자신 또는 다른 선수의 어이없는 행위로 인해 홈런기록이 날아가 버리는 일들이 이에 속한다고 하겠다.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이 앞 주자의 누 공과로 홈런을 강탈(?) 당한 사건이 대표적. 이상 두 가지의 공통점은 규칙에 의해 모두 공식적으로 기록이 완전 무효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한편 선수가 세운 기록을 없애지는 않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기록이나 규칙상 결점은 없지만 묵시적인 기준에 미달되었을 때, 이를 참고 기록으로만 해석하는 경우다. 1993년 박동희(당시 롯데)가 쌍방울을 상대로 노히트노런 기록을 세웠지만, 경기가 비로 인해 강우콜드게임(6회)으로 끝났다는 점 때문에 정식 노히트노런 경기 수립자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 하나의 예다. 2004년 한국프로농구에서는 기록을 두고 희한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즌 막판 3점슛과 블록슛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던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듯한 내용의 경기를 치렀다 문제가 커지자, 이 부문에 대한 시상식 자체를 아예 없애버린 일이다. 결국 기록으로 두 부문에서 1위 자리에 올랐던 선수의 기록은 지금도 참고기록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아직까지 선수의 기록에 대해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재단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 다소의 비난과 운용상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선수운용 방식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은 감독과 팀에 있다는 점을 들어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 시대의 생각과 흐름은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과거와 달리 그만큼 인정받을 수 없는 기록의 범위는 점차 넓어져가고 있다. 다음 번에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남겨진 억지(?) 기록들을 중심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기록들에 대한 얘기를 좀더 늘여보도록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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