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기록은 짧고 비난은 영원하다
OSEN 기자
발행 2007.11.26 14: 43

어느 원로 야구인은 언젠가 기록에 관한 회고를 하면서 한국프로야구의 역사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로 1989년 10월 4일을 꼽았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찾아보니 그 해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한 빙그레와 삼성의 더블헤더가 열린 날이었다. 2차전 4회말 1사 만루에서 송일섭(빙그레)의 우전안타가 터졌다. 당연 1루주자는 2루까지 달렸는데 웬일인지 3루주자 황대연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타자가 바로 유승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승안(빙그레)은 당시 김성한(해태)과 타점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유승안 앞에 주자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 두려는 생각으로 3루주자의 득점을 막았던 것이다. 당시 빙그레 감독의 의도대로 유승안은 때맞춰 주자일소 2루타를 작렬시키며 타점 3개를 한꺼번에 쓸어 담는데 성공했다. 이쯤 되면 ‘미필적 고의’라든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방법이 아니라 아예 드러내놓고 오로지 개인 성적만을 위해 선수의 플레이를 거의 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원로 야구인이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유승안의 경쟁자였던 김성한도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는 마찬가지. 유승안의 타점 조작(?) 해프닝이 있기 바로 이틀 전, OB와의 경기에서 2루주자 박철우(해태)는 야수의 악송구가 외야 담장까지 굴러갔는데도 불구하고 3루에서 멈춰 서버렸다. 그리고 이 때를 놓칠세라 대타로 등장한 김성한은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추가했는데, 아마도 이 일이 사태의 원인이 됐지 않나 싶다. 시즌이 끝났을 때, 유승안은 공교롭게도 1타점 차이(85-84)로 김성한을 누르고 그 해 타점왕에 오를 수 있었다. 1989년은 유승안 타점사건 말고도 굵직한 억지 기록들이 줄을 이은 해였다. 9월 30일 선발투수 최창호(태평양)는 해태와의 경기에서 9-1로 리드하던 5회 2사 후, 갑작스레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뒤를 이어 등판한 투수는 중고 신인 ‘킹콩’ 박정현이었다. 박정현을 마운드에 올린 이유는 단 하나. 강기웅과 신인왕을 놓고 경쟁하던 박정현에게 ‘신인 최다승 신기록 19승’ 이라는 굳히기 훈장을 그렇게 해서라도 얹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덕아웃에 계산기가 등장했던 고원부와 강기웅의 타율 싸움은 이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하겠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 빙그레는 또 한번의 기록에 관한 악수(惡手)를 두게 된다. 장종훈(빙그레)이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40홈런 시대를 열었던 경사스런 날이기도 한 그날 9월 17일. 빙그레와 해태의 대전 경기에서 송진우(빙그레)는 6-0으로 앞서던 5회에 선발 한희민을 밀어내고 구원(?) 등판해 승리를 빼앗다 시피하며 시즌 19승째를 기록, 최다승 부문 1위를 사실상 결정지어 버렸다. 그것도 다승왕을 놓고 다투던 이강철(해태)의 바로 코앞에서. 전날까지 1승차이(18-17)로 송진우를 바짝 따라 붙었던 이강철이 덕 아웃 옆 의자에 앉아 이 잔인한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송진우는 그 해에 다승과 구원투수 부문 ‘동시석권’이라는 기록상 사상 초유의 위업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치명타가 되어 정작 골든 글러브에서는 염종석(롯데)에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크게 뒤져 최고투수의 자리에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한국프로야구 기록사에 있어서 기록 만들기(?) 원년의 해로 불릴 수도 있을 1984년, 이만수의 타격 3관왕에 연루된 홍문종(롯데)의 ‘9연타석 고의4구’와 같은 기록은 지금까지도 버젓이 4구에 관한 최고 기록으로 연감에 올라있는데,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 지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9타석을 연속 고의4구로 출루한다는 것은, 만루임에도 상대로부터 고의4구를 얻어낸 바 있던 배리 본즈도 차마 꿈꾸기 힘든 대기록(?)이다. 지금까지 대충 살펴본 억지 기록들 외에도 크고 작은 기록 만들기에 관한 일화들은 꽤 많다. 배리 본즈의 756호 홈런 공을 경매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사람이 그 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네티즌의 의견을 구했는데, 가장 많은 공감대를 얻은 처리방식은 그 공에 별표(*)를 해서 명예의 전당에 보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세워진 기록은 인정하겠지만 그 기록이 어떻게 해서 세워진 것인지는 분명히 기억하겠다는 팬들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있음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비난은 짧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인간의 망각을 근거로 한 세간의 속설을 별표(*)는 보기 좋게 발로 차 버렸다. 아무 힘도 없을 것 같은 부호 하나가 시간적인 제약까지도 극복해 낸 것이다. 기록에 관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일들까지도 미끼에 걸린 물고기처럼 딸려 올라오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게다가 이젠 일부러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별표(*)가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무작위로 1987년 타격왕이 누군지, 1993년 타점왕이 누구인지 찾아보지 않고 금방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지금까지 열거한 반 억지 기록의 많은 사례들은 정확하게 몇 년도에 일어난 일인지는 가물가물 할 수 있겠지만, 그 내용만큼은 팬들의 기억에 대충이라도 살아 숨쉬게 마련이다. 이쯤 되면 속설도 이렇게 바뀌어야 될 듯 싶다. ‘기록은 짧지만 비난은 영원하다’ 라고….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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