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장성호의 설움
OSEN 기자
발행 2007.12.04 17: 13

며칠 전 발표된 2007 골든 글러브상 후보에 올해도 그 이름은 어김없이 올랐다. 1998년 이후 무려 10년 연속이다. 프로야구 최초의 10년 연속 3할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했던 KIA의 장성호가 그 주인공이다. 비록 시즌 타율 2할8푼1리로 10년 연속 3할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름의 기본 성적을 바탕으로 10년 연속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오른 장성호는 영양가도 없고 생길 것도 없는 재야의 기록(?)을 또 하나 보유하게 된 셈이다. ‘장성호’라는 이름 석자는 팬들에게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이 먼저 떠올려지는 이름이다. 한 시즌만 친다 하더라도 도달하기가 쉽지 않은 3할대의 타율을 무려 9년간이나 유지했다는 사실은 뛰어난 타격솜씨 하나만을 가지고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그에 따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한국프로야구의 골든 글러브는 해당 포지션에서 투타에 걸친 최고의 선수를 뽑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보다는 아무래도 주목할 만한 기록을 거둬들인 선수가 수상에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장성호에게 꾸준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선수가 평소 거두던 성적보다도 절대적으로 월등한 성적을 기록한 해를 일컬어 흔히들 ‘몬스터(monster) 시즌’이라고 부른다. 장성호가 골든 글러브를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던 것이 그에게 몬스터 시즌이 없어서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록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장성호에게 있어서 선수생활의 하이라이트는 2002년이었다. 3할4푼3리의 타율로 생애 처음 타격왕에 올랐던 장성호는 비단 타율뿐만 아니라 출루율 1위(.445), 최다안타 3위(165개), 타점 6위(95타점)라는 화려한 성적을 거두었던 해였다. 무엇보다 어필효과가 큰 홈런에서도 19개라는 적지 않은 수의 홈런도 기록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호는 골든 글러브와는 인연을 맺을 수 없었다. 이승엽(삼성)이라는 거대한 벽 때문이었다. 이승엽은 1997년부터 일본 지바롯데 마린스로 이적하기 전인 2003년까지 무려 7년간 장성호의 포지션이기도 한 골든 글러브 1루수 부문을 연속해서 독식한 마의 장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최대의 적이었던 이승엽의 ‘일본 진출’이라는 뜻밖의 호재(?)를 품에 안은 2004년, 장성호는 드디어 골든 글러브의 꿈을 이루는가 했지만 이번에는 1루수로 전향한 양준혁(삼성)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고, 2005년엔 김태균(한화)에게, 2006년에는 타격 3관왕에 오른 이대호(롯데)에게 눌리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올 시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타율 3할마저 지키지 못해 그나마 후보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할 처지다. 만약 한 해가 아니라 10년을 통째로 묶어 골든 글러브 1루수 자리를 가린다고 한다면 장성호가 그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또 한 사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깐돌이’ 라는 별명을 가졌던 유지현(LG)이다. 그는 데뷔 첫해인 1994년 서용빈, 김재현과 함께 신인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LG트윈스를 일약 우승으로까지 이끌고서도 이종범(해태)이라는 당대 최고의 유격수에 가려 정작 골든 글러브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그러기를 4년. 유지현은 그나마 이종범이 일본으로 떠난 이듬해(1998)에 겨우 골든 글러브의 한을 풀 수 있었지만, 장성호는 그렇질 못했다. 올 시즌까지 12년간 통산 1575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개인통산 최다안타 5걸 안으로의 진입에 성공한 장성호는 장차 한국프로야구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다. 현재 양준혁이 2095개의 안타로 최다안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지만, 이제 겨우 30세라는 장성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언젠가는 양준혁의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 날이 오리라고 여겨진다. 그렇게 되면 장성호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인데, 그때까지도 골든 글러브와는 끝내 연을 맺지 못하고 말 것인지…. 평민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뜻하는 말로 쓰였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이라는 어구(語句)가 생각이 난다. 바꿔 말하면 왕이 되기 위해선 결국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자리로도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이 말에 비춰보면 장성호가 지금까지의 만년 후보라는 평민신분에서 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화려한 기록의 반란이다. 그것도 통산 기록이 아닌 한 시즌 내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해마다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 다가오는 이 맘 때가 되면 한동안은 가장 생각나는 이름이 아마도 장성호가 될 듯 싶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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