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토요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숭민 권투체육관을 찾았다. 성탄절 1차 방어전을 앞둔 최요삼(35.주몽담배)선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겨울 날씨가 늦가을만 못할 정도로 따뜻한 주말이라 거리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지만 체육관엔 연말의 정취는 아랑곳 없이 원 투 카운트를 날리는 관원들로 북적거렸다. 그들 속에 까칠한 모습을 한 작은 키의 최요삼 선수는 반갑게 필자를 맞아 주었다. 최요삼은 “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 훈련입니다. 내일은 체중 조절 할 겁니다. 고생 좀 해야죠. 그래도 이번엔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 같습니다. 어서 빨리 계체량 끝나서 뭐 좀 먹었음 좋겠다’ 며 투정 섞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약 1kg이 오버돼 있는 체중을 줄이는 일은 일도 아니라며 이미 이골이 나 있는 노장의 여유가 묻어 나왔다. 그는 “ 지난 주에는 감기가 걸려서 좀 걱정을 했는데 이제 나아졌습니다. 장사(시합)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웃음으로 넘겼다. 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장사= 시합 을 뜻한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볼 살도 빠져 보여 그 동안의 훈련이 꽤 될 것 같은 예상을 했는데 역시나 그렇단다. "챔피언 도전을 했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이 했어요. 챔피언타이틀을 딴 뒤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강행군을 해 왔습니다. 어린 선수이기는 하지만 자신 있어요"라는 그는 그동안의 준비 과정을 살짝 털어놨다. 1차전 방어전 상대는 인도네시아의 헤리아몰 선수다. 올해 스물 셋. 최요삼과 띠 동갑 정도의 나이 차가 있다. 통산 32전 22승 3무 7패로 WBO 랭킹 1위에 인도네시아 복싱 영웅인 페더급 챔피언 크리스 존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선수로 국제 경기경험도 풍부해 결코 쉽지 않은 방어전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 하고 있다. 하지만 최요삼은 '강타자가 오히려 쉽다. 만만치 않기 때문에 긴장을 할 수 있게 해 도움이 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장사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 베테랑이지만 예기치 못한 감기가 승부의 방해가 될 듯 싶어 "감기 걸렸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곧바로 나이 타령으로 들어갔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봐요. 베트남 전지 훈련 다녀와서 좀 과하다싶게 훈련을 했더니 바로 감기가 오더군요. 이제 나아졌어요. 그래도 걱정스러워서요. 제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세요?"라며 갑자기 종아리 쪽의 바지를 걷어 부치고 회색 내복을 보여주었다. 최요삼은 "위 아래 다 내복 입었어요. 젊을 땐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지금은 제 몸을 위하는 방법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며 경기 당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링에 오르기 위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소개를 했는데 챔피언이 내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명예롭게 내려 오고 싶어요." 최종 꿈과 목표를 물었더니 은퇴에 대한 생각을 스스럼 없이 내비쳤다. 물론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의 성과와 도전도 박수를 보낼 정도라고 필자는 생각했지만 ‘ 멋지게 은퇴하는 과정’ 에 대해 매일 밤 고민한 듯 최요삼은 방어전을 하던가, 통합 챔피언 자리에 도전을 하던 간에 마지막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해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래도 있잖아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 이 노랫말처럼 사는 게 제 꿈이에요. 평범하게 사랑하는 이와 살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네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14살에 권투를 시작했다는 최요삼은 횟수로 20년 이상을 복서로서 살고 있다. 평범한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가능 할까요?” 라며 묻는 그를 보니 이제 남은 모든 것은 ‘도전한다’ 는 그 자체의 의미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제가 돈 때문에 링에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명예롭게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요” 12월 25일 1차 방어전을 앞두고 있는 최요삼에게 중요한 건 승패보다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결과 보다는 과정’ 이라는 말을 자주 하고 또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막상 무슨 일에 닥치면 그것은 말뿐인 허상이다. 결국 우리는 결과를 더 중요시하게 된다. 젊은 시절 한때는 최고의 자리에서 안일한 마음도 있었다는 그가 지금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과정을 묵묵히 해 내고 있다며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겨 달라'며 조바심 어린 필자의 말에 "이길 겁니다. 걱정 마세요"라며 침착한 답변을 해주었다. 가끔 ‘곱게 늙어야지’ 하는 어르신들의 되새김 하는 말귀 마냥 최요삼의 '멋지게 마무리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필자의 가슴 속에 꽂히는 이유는 왜 일까. 24일 계체량을 무사히 통과해 평범한 사람들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탐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 최요삼의 얼굴이 기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