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현이가 손에 골절을 당한 것 같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김준재 해태 트레이너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다 그랬는데?” “운동장에서 공을 잘못 밟아 그만 넘어졌는데요.” “빨리 병원으로 데려와 봐.” 내 마음이 더 급해졌다. 1991년,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에이스 투수가 오른손 골절이라니. 마른 하늘에 날 벼락 격이었다. X-선을 들이댔다. 오른쪽 제4 중수골 윗부분이 부러져 있었다. “어떻게 다쳤다고?” “아, 연습을 막 끝냈는데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공을 밟아 넘어졌어요.” “야! 대한민국 정형외과 전문의를 고스톱 쳐서 딴 줄 아냐? 바른대로 말해!” “정말인데요.” 조계현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갔다. “까불지 마라. 이 골절은 파이터스 골절이야. 싸움꾼이 주먹을 잘못 휘두를 때 생긴단 말이야. 그래도?” 집요하게 추궁해 들어가자 아예 조계현의 입이 딱 얼어붙어버린다. “주먹을 잘못 휘두르면 이 골절이 생겨. 일단 네가 말 한대로 넘어져서 다쳤다고 스탶들에게 얘기해.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대로 치료하고 또 훈련하는 거다. 알았냐?” 엄포를 놓은 뒤 치료를 시작했다. 한국시리즈까지는 앞으로 40여일. 또 돌팔이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뼈를 맞춘 뒤 당연히 반깁스를 해야 함에도 전체깁스를 했다. 그리고 깁스에 구멍을 뚫어 레이저를 이용한 골절 유합 촉진치료를 시도해봤다. 레이저 시술은 막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어서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었지만,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해 조계현은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로 출장했다. 완전하지는 않았으나 여우같은 조계현은 자신의 몸을 추스리며 잘도 던졌다. 주치의인 나로서는 정말 의미 있는 승리였다. 가끔 환자가 부상경위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웬만한 전문의라면, 골절의 상태나 부위를 보고 어떤 상황으로 인해 골절이 됐는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손의 골절은 넘어져서 생긴 골절인지, 주먹을 쥐고 때리다가 온 골절인지 눈에 훤하다. 특히 제2 중수골 두부의 골절은 정권으로 정확히 가격하다가 오는 골절로 일명 ‘복서스 골절’이라 부르는 반면, 제4 중수골이나 제5 중수골 골절은 정권가격이 아닐 때 많이 오는 골절로 ‘파이터스(싸움꾼) 골절’로 불린다.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조계현의 골절 내막은 이랬다.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가 택시기사와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홧김에 주먹으로 택시문짝을 쳤다는 얘기다. 그러면 그렇지! (삼성 조계현 코치는 이 부분에 대해 임 박사와는 다른 얘기를 했다. 당시 집에서 일하다가 농문짝 틈에 손이 끼는 바람에 뼈를 다쳐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 후 그의 아내는 집에서 일체 일을 하지말라고 했다고까지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씁슬한 미소가 지나지만 당시는 애를 많이 태웠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야구에 관한 일가견이 잇던 모 스포츠신문사의 야구담당 기자가 X선 필림까지 보며 그림을 그려 가지고 서울의 모모한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계속 나를 추궁(?) 해대며 은근 슬쩍 조개현의 포스트 시즌 출장 불가를 주장 해댔다. 나는 계속 “출장 할테니 두고 보라” 하고 그 기자는 투수가 공을 쥐는 손에 골절이 왔는데 어떻게 40여일 밖에 남지 않은 한국시리즈라는 단기 승부에 선발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그 기자나 나나 그날 야구장에서 초조함은 같았으리라. 정말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한국야구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