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6)박철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OSEN 기자
발행 2008.01.15 12: 03

(6)박철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해태의 살림이 어렵다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출범 당시부터 감독의 골머리를 앓게 한 것은 선수 수급문제였다. 과거 해태의 주전은 '전설'로 통했다. 막강 그 자체였다. 그러나 주전을 뒷받침해줄 만한 백업요원이 늘 부족했다. 백업요원이 있긴 했지만 주전과의 기량 차가 너무 나는 바람에 감독은 늘 '주전들의 부상'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초창기에 좌타자 기근은 심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목이 말라갈 즈음, 박철우라는 걸출한 좌타자가 해태에 입단한다. 대학시절 활약상이 준 인상 때문에 박철우에 대한 기대 역시 굉장했다. 좌타자라는 프리미엄도 프리미엄이지만, 당당한 체격과 힘 있는 타격도 수준급이었다. 박철우가 해태에 들어와서 상당한 몫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야구센스나 수비 등에서 노출된 약간의 문제점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박노준, 동봉철 등 좌타자들이 줄줄이 영입됐다. 자연히 박철우는 이들 두 선수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빠졌다. 설상가상! 페넌트레이스가 한 참 진행 중인데 박철우가 슬럼프 지옥에 떨어지고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트레이너를 데리고 내게 왔다. 박철우가 오목가슴에 통증이 있고, 소화가 안 되며, 연습 후 이따금 구토를 하더라 면서 말이다. 장비 찜쪄 먹을 만한 몸집이 소화불능에 구토라니…. 이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철우에게 병력(病歷)을 꼬치꼬치 물어본 뒤 "철우야. 내가 치료하는 것보다 내 후배가 내과 전문의인데 거기 한번 가봐라"면서 광주의 이상명 내과원장을 권했다. 몇 시간 후, 박철우가 1주일분의 약을 가지고 다시 내게 왔다. "병명이 뭐라고 하든?". "신경성 위염이랍니다. 2주 정도는 쉬라고 하던데요". 아차 싶었다. 박철우를 이 원장에게 보낼 때 미리 전화를 걸어 최근 박철우의 상황을 설명해줬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래, 철우야. 많이 아픈가 보구나.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달라. 약 열심히 먹고 5일만 쉬면 돼. 2주는 아니야". "2주간 쉬라던데요". "철우야. 내 생각은 약 먹고 푹 쉬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그보다는 열심히 스윙 연습을 해서 안타나 홈런 하나치면 병이 씻은 듯 나을 거야". 경쟁자들의 입단은 일시적인 슬럼프를, 스트레스는 다시 신경성 위염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기간의 휴식보다 안타와 홈런으로 그를 자극, 스트레스를 해소해보고자 5일을 강조했다. 고맙게도 박철우는 5일을 쉬고 나더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 펄펄 날았다. 매해 시즌이 끝나고 선수들의 납회식이 있기 직전, 나는 구단과 선수단의 양해를 얻어 1시간 가량 선수들과의 대화시간을 갖곤 했다. 선수들은 치료과정에서 느낀 점이나 섭생, 운동, 자기관리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나는`돌팔이 변명‘을 늘어놓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 해의 주제가 박철우의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위염이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내게는 아직도 해답을 구하지 못하는 질문 하나가 있다.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오랜 인류가 고민해온 것처럼, 슬럼프가 먼저인지 부상이 먼저인지 아리송한 것이다. 이 바늘 같은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실처럼 따라오는 삽화 하나. 지난 해 KIA 타이거즈 감독이었던 서정환이 해태의 '유일한' 유격수를 맡던 시절의 얘기다. "정환아, 슬럼프가 먼저냐, 부상이 먼저냐?".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선수치고 안 아픈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경기하고 집에 가면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코치들에게 좀 쉬어야겠다고 말할 양으로 이튿날 아침 운동장에 나가지요. 그러나 분위기를 보면 그리 됩니까? 워밍업하고 땀내고 경기에 열중 해 봐요.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대요". '주전'을 생각하면 아픈 것도 잊어버리는 게 선수들의 현실이다. 그러니까 서정환의 말은, 슬럼프가 먼저고 부상이 먼저고를 따질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프로는 지상 목표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는 동안 과다한 훈련을 마다 않다가 급기야 몸까지 망쳐 정작 프로에 와서 중도하차 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체계적인 훈련과 과학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요즈음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좋은 재목의 선수가 잘못된 예를 들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태업이라는 선수를 생각 한다. 프로야구가 탄생하기 전인 1981년 한참 고등학교 야구가 인기 절정에 있을 때 야구를 좋아 했던 사람들은 기억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전남 고등학교를 한해 3관왕에 올려놓은 김태업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다. 그해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육대회 출전을 앞두고 김태업이 아버지와 함께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좋은 체격에 정말 훤출한 미소년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픈 팔꿈치 X-선 필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팔꿈치 안쪽의 성장판이 깨져 있는 것이었다. "이팔로 어떻게 투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너무 아프면 진통제 먹고 그래도 아프면 국소주사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 소견으로는 절데 이번 경기에 출전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권고했으나 결국 주위의 강압(?)에 못 이겨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를 하고 말았다. 전국체전은 우승을 못했지만 그해 3관왕을 한 투수이니 자연히 일류대학에 스카우트 되어 대학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깨진 그릇이 어찌 정상적인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었겠는가? 대학에 들어가 결국 팔꿈치 수술을 하게 되고 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바꾸어 대학 생활을 마치고 해태에 입단하게 됐다. 그 좋은 체격과 자질을 가지고도, 결국 프로생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전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지금도 청소년 학교야구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부상학생이 늘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프로선수 각 40명씩을 조사하여 2007년 대한정형외과 스포츠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15년 전보다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결과를 보고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1989년 한국시리즈 MVP로 뽑힌 박철우에게 김종모가 샴페인을 뿌리며 축하해주고 있다(제공=한국야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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