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아웃과 세이프는 심판원의 고유권한 사항이다. 원론적인 규칙상 그 누구도 어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공식기록원은 심판원의 판정에 따라 그대로 기록을 해야 한다. 기록원이 보기에 심판원의 판정이 분명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거스르는 기록을 할 수는 없다. 이것이 기록원의 야구기록법 대원칙이다. 언뜻 보면 아주 마음 편할 것 같다. 어려운 것은 심판원이 결정을 내려주니까.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원칙의 이면에서 선수의 아웃과 세이프를 놓고 언제나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기록원의 자리다. 다만 심판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심판원은 목전에서 벌어진 결과를 보고 판정을 하지만, 기록원은 눈앞에서 벌어졌을 보지 못한 가정의 상황을 놓고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원이 선수의 아웃이나 세이프를 가려내야 하는 경우의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선수의 안타판정과 도루판정이다. 애매한 내야땅볼을 치고 1루로 달려나가는 타자주자와 악송구 또는 포구실수가 겹쳤을 경우, 어느 쪽이 더 빨랐겠는가를 판단해내는 것이 전자이고, 도루를 시도한 주자와 송구가 엉켰을 경우, 이를 가려내는 일이 후자에 해당된다. 앞서 얘기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미완성의 상황만을 가지고 짐작만으로 그 결과를 예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눈앞서 끝맺음 된 결과에 대한 심판원의 판정에도 오심이 생기는 판국인데, 멀찌감치 앉아서 가상으로 아웃, 세이프를 놓고 가부간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은 확신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2007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논란이 되었던 정근우(SK)의 홈스틸 인정에 따른 잡음도 사실은 이와 같은 현실적인 고충이 가장 적나라하게 집약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정근우는 7-0으로 앞서던 6회초 1사 2, 3루 상황에서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던 이혜천(두산)이 3번타자 김재현에게 초구를 던지려는 순간, 홈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접전 중이던 경기가 두산 이대수의 겹치기 실책으로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정근우가 홈스틸을 끊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선수도, 관계자도, 팬도 거의 없었다. 뜻밖의 홈스틸에 깜짝 놀란 포수 채상병은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투구를 잡지도 못한 채 뒤로 빠뜨려버렸고, 정근우는 아무런 저항도 없는 상태에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이날 정근우의 기습은 야구 매너와 맞물려 SK와 두산 팬들간의 설전까지 야기시켰는데, 7-0에서의 홈스틸은 너무 한 것이 아니냐는 쪽과 시리즈 전적 0-2로 몰린 상황에서 팀 분위기의 극적 반전이 필요했다는 쪽의 대립이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점수가 벌어진 상황에서 이혜천에게 초구를 얻어맞고 나간 일이 사단이 되어 정근우의 독기를 자극했는지도. 아무튼 허를 찔린 두산이 공황상태로 접어들었을 그 순간, 기록원 역시 순간 넋을 잃었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정근우의 득점을 홈스틸로 볼 것이냐 아니면 포수 채상병의 패스트 볼로 기록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것이다. 일반적인 2루나 3루도루와는 달리 홈스틸의 경우엔 3루주자가 비록 투구에 앞서서 스타트를 끊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도루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홈스틸로 기록되기 위해선 홈에서 3루주자가 살았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투수의 와일드 피치나 이날 채상병의 경우처럼 패스트 볼이 홈스틸 시도와 겹쳐 일어났을 경우, 와일드 피치나 패스트 볼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3루주자가 홈에서 세이프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에만 그 주자에게 홈스틸 기록을 부여하도록 규칙상 제한하고 있다. 정근우의 득점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는 결국 채상병의 패스트 볼이 쥐고 있는 셈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홈 플레이트 바로 뒤에서 본 두 공식기록원의 뇌리에 정근우의 득점은 두 갈래로 갈라져있었다. 제3자의 처지에서 지켜본 다른 기록원들의 계산도 일치되지 않기는 마찬가지. (같은 상황을 놓고 기록원들의 판단이 갈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이어서 설명하기로 한다) TV의 리플레이 화면까지 참조한 끝에 담당 공식기록원은 정근우의 득점을 패스트 볼에 의한 득점으로 최종 마무리지었다. 타이밍상 채상병이 투구를 제대로 잡았더라면 정근우는 홈에서 아웃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을 근거로 내린 결정이었다. 2004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전준호(현대)가 삼성을 상대로 기록한 홈스틸이 있긴 하지만, 내용상 진정한 한국시리즈 최초의 단독 홈스틸은 그렇게 무산이 되고 말았다. (계속)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