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선동렬과 이종범은 타고난 스타 해태 주치의를 하기 전이나 주치의 초기까지만 해도 대개는 그렇게 생각하듯, 나 역시 누구나 운동을 열심히 하면 좋은 선수가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선수들을 보면 열심히 운동하지 않는다고 닦달하곤 했는데(자극을 준답시고), 기실 주치의로서 선수들과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니 훌륭한 선수는 타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동렬, 이종범이 내가 본 좋은 예다. 선동렬이 국제적이며 국보급 선수여서가 아니라, 그의 몸은 정말 타고 났다. 물론 광주일고 시절부터 또 더 유년기인 송정서초등학교 시절부터 극진한 아버지의 배려가 크기도 했지만. 선동렬 부친의 애정은 대학 진학 이후부터 극치에 달하기 시작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선동렬의 모교는 고려대학교이다. 진학이 결정되기까지 곡절을 알면 당시 고려대 최남수 감독은 큰 횡재를 한 것이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사실 선동렬은 다른 대학 진학이 거의 결정되었는데 그의 부친이 최남수 감독을 불러 자신의 아들을 무조건 고려대에 보낼 테니 절대 무리하지 않도록 해주고 어느 때건 휴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도록 하는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그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면 선동렬의 대학시절, 그는 자타가 공인한 대한민국 에이스였지만 한 번도 마운드에서 완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해태 입단 당시 대한민국 모든 입 달린 야구인들이 선동렬의 완투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겼을 정도였으며 심지어 그 자신도 완투를 못하는 것으로 느낄 정도로 철저히 보호받았던 것이다. 선동렬을 아는 사람이면 그 커다란 덩치의 유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의사인 나도 그토록 완벽한 신체를 본 적이 없다. 20여 년 동안 해태 선수들을 비롯해 다른 구단의 많은 선수들을 다 보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다. 선동렬의 정상적인 완벽한 신체는 근골격의 발육상태부터에서 두드러진다. 보통 야구선수이니까, 근골육이 보통 사람에 비해 정상적으로 잘 발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강한 훈련을 받게 하는 우리나라 현실은 유명 선수들일수록 망가진 몸을 갖고 있게 한다. 또 다른 야구천재 이종범도 마찬가지다. 1993년 입단 당시부터 1998년 일본에 건너가기까지 나를 찾아온 적이 가장 적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종범은 그의 특기인 도루를 하다 팔이나 손등에 찰과상을 입어 찾아온 적은 있어도 야구선수들이 흔히 호소하는 발목이나 무릎, 허리 등이 아파서 찾아온 적은 없다. 그만큼 완벽한 체질을 타고 난데다, 그의 야구센스는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겠지만 정말 천부적 재질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종범이 일본에 건너가 야구가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 싶다. 어느 날 TV에 보이는 이종범의 뒤통수에 생겨난 원형 탈모증은 스트레스 때문에 생겨난 것이 분명했다. 순간 가슴이 짜하니 통증이 생길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거기다 팔꿈치에 골절을 입고 수술을 할 때는 정말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좋은 선수 하나가 생명이 끝장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어떻든 고향 팀에 돌아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야구선수들이나 야구 지도자들, 부모님들에게 바라는 것은 일단 초, 중, 고 시절에 야구를 잘하는 것보다 건강한 체격으로 잘 자라나야 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동렬이나 이종범을 교본으로 삼았으면 한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