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12)‘천진한 노지심’장채근, 급성간염 환자 둔갑 사건
OSEN 기자
발행 2008.01.25 15: 54

(12)장채근, 1991년은 그의 생애 최고의 해 장채근(44) 전 해태 타이거즈 코치가 프로에 뛰어들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응당 1991년일 게다.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으니까. 장채근의 외모는 그의 별명마따나 영락없는 중국 고대소설 의 등장 인물같은‘천진한 노지심’이다. 엄청난 거구이지만, 얼굴은 남에게서 10원짜리 동전하나도 떼먹지 못할 만큼 순진하게 생겼다. 그 노지심이 MVP 트로피를 들고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라니…. 그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기만 하다. 야구에서 포수의 비중은 투수 못지않다. 그래서 흔히 ‘어머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의 숱한 포수들 가운데 국보급 투수로 불리는 선동렬(45)과 배터리를 이뤄 한국시리즈같은 큰 무대에서 우승을 일궈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영광 그 자체라는 얘기다. 그럴진대 장채근은 1991년 한국시리즈 최종 4차전에서 선동렬과 짝을 이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맞아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으니 그 감동이 오죽했겠는가. 장채근은 그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과 결승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 해 한국시리즈 성적은 4게임에서 15타수 7안타, 8타점, 타율 4할6푼7리였으니, MVP로 손색이 없었다. 마지막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자마자 마운드로 뛰어올라가 거구의 선동렬을 새색시처럼 덥석 안아 올리던 광경은 지금도 한국시리즈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장채근 하면 잊지 못할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어느 경기에선가, 상대편 선수가 홈에 쇄도하면서 장채근의 허벅지에 발을 내리꽂아 버렸다. 허연 힘줄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막 끝내려는 참인데 병원 로비가 아수라장 아닌가. 아들 사랑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장채근의 어머니가 소식을 듣고 부랴사랴 달려온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붙들고 “왜 다쳤냐”, “누가 그랬냐”며 묻더니, ‘그 놈’을 잡으러 원정팀 숙소로 내처 가야한다며 성화였다. “저 죽고 나 죽어야 한다”면서 눈물바람을 하는 통에 졸지에 병원로비가 난장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어머니를 가까스로 원장실로 인도해 고정하시라, 차분하시라 설득하느라고 진땀 꽤나 흘렸다. 또 한 가지는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후학들을 위해 지면을 빌려 공개한다. 장채근은 요즘도 나를 찾아와 건강 상담을 자주 하는 축에 속한다. 우람한 체격에다 운동장을 이불 삼아온 그가 웬 건강 상담인가? 툭 터놓고 말하자면 장채근의 몸은 ‘표리가 부동’하다. 외양만 호텔이지 속내는 천막촌이다. 많지도 않은 나이에 2~3개의 성인병을 감기처럼 달고 다니는 위인이 바로 장채근이다. 뒤늦게서야 등산을 한다, 음식을 조심한다, 부산을 떠는 모양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성인병의 주범은 다름 아닌 술이다. 노지심 처럼, 장채근의 주량 역시 ‘언터처블(Untouchable)’ 그 자체였다. MVP가 되던 해에는 포스트시즌 후 아예 술집에서 자고 깨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 이듬해 장채근은 봄 시즌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유난히 어그적거리는가 싶더니 영락없이 슬럼프에 빠졌다. 유독 여유가 없는 포수자리를 두고 들락날락하니, 코칭 스태프가 어찌 고운 눈으로 보겠는가.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코칭 스태프는 장채근을 믿고 기용했다. 페넌트레이스가 한창 진행 중이던 여름. 기어코 사건이 터졌다. 자꾸 피곤하다며 한두 게임 결장하더니만, 간염통보를 받고 말았다. 트레이너가 쫓아왔다. “원장님, 장채근 선수가 간염으로 쉬어야 한답니다.” “자네가 볼 때는 어떻던가?” “자꾸 피곤하답니다. 그래선지 몸도 무거워 보이고.” “감독님께는 말씀드렸는가?” “보고 드렸더니, 원장님께 가보라던데요.” “그래, 그럼 병원으로 같이 와보게.” 장채근이 트레이너와 함께 진찰실에 나타났다. “많이 아프냐?” “예. 내과에서 진찰하고 검사를 했는데 간염이라고 한 달은 쉬어야 한다던데요.”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게 아니고?” “아닙니다. 정말 무지하게 아파요.” “그러냐? 그럼 내과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 오너라. 그리고 내가 그런다고 말씀드리고 혈액검사 결과지도 첨부해 달래라.” 장채근이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이튿날. “원장님, 진단서 여기 있습니다. 먼저 한달 쉬고 검사해봐야 한다던데요.” “어디 좀 보자.” 아니나 다를까, 진단서 병명 란에는 정확히 ‘알콜성 간염’이라고 박혀 있다. ‘약 일개월간 가료 후 재검 요함’이라는 딱지와 함께. “채근아, 이 진단서대로 처리하면 되지?” “예, 한 달만 쉬겠습니다.” “그래, 쉬기는 쉬어야지. 그런데 구단이나 감독님께 보고해야 되겠지?” “그래야지요.” “얼씨구, 야! 너 이 진단서 읽어나 봤냐? 한글로 써있으니 모를 리도 없을테고.” “뭔데요?” “뭐긴, 알콜성 간염이야.” “예?” “그래야 한다고 했으니까, 구단이나 감독에게 그대로 통보하고 기자들이 물어봐도 그대로 얘기 해줘야겠지?” 여기에 이르자, 노지심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찌그러진다. “야, 채근아. 너 지난해 MVP 되고 나서 올봄까지 내처 술 먹은 거 다 알아. 내가 할 일없이 혈액검사 내용을 첨부해달라고 한 줄 알아?” 풍선에서 바람이 더 빠진다. “지금 당장 집에 전화해서 입원준비 해 가지고 오라고 해.” “입원이요?” “절대 안정이 제일 중요해. 입원하자. 그 대신 이 알콜성이란 말은 없애겠다.” 그리하여 장채근은 때 아닌 ‘급성간염’ 환자로 둔갑해 치료를 시작했다. 지금도 사석에서 장채근을 만나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메뉴다. 도를 넘는 음주는 선수생명에 치명적이다. 장채근의 경우도 선을 넘어선 음주로 인해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반짝’ 포수로 선수생명을 마쳤고, 지금까지도 인기 없는 나를 찾아온다. 선수생활을 후회없이 오래하려는 후배들은 장채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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