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분위기로 뒤숭숭했던 2007 한국시리즈 3차전(10월 25일)이 끝나고 난 뒤, 한국야구위원회는 곧바로 상벌위원회를 열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시즌 첫 출장경기에서 빈볼시비로 퇴장을 선언 당한 이혜천(29. 두산 베어스)의 징계수위를 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3차전 6회초, SK 와이번스 정근우(26)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주심으로부터 1차 경고를 받았던 이혜천은 정근우의 홈스틸 시도 등이 겹치며 0-9로 점수차가 더욱 벌어지자, 평정심을 잃고 김재현(33) 타석에서 또 한번 몸 쪽으로 빈볼성 투구를 던진 바 있었다. 그런데 이혜천에게 내릴 페널티가 결정 난 이후, 화제의 초점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빈볼 퇴장사건 발단의 주된 요인 중의 하나였던 정근우의 홈스틸 시도가, 기록상 홈스틸이 아닌 패스트 볼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된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던 것이다. 기록위원회 자체 내에서도 반신반의 하던 차에, 현장의 야구적인 경험이 풍부한 기술위원들의 이견(異見)이 잇따르자 기록위원회는 판정재고라는 결정을 내리고 시계추를 일단 하루 전으로 되돌려 놓기로 했다. 주어진 과제는 정근우의 기록을 정정하느냐 마느냐였다. 기록규칙상 이미 내린 기록 결정에 대해 정정이 가능한 시한은 24시간 이내다. 3차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4차전이 시작되기 이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절차상 남은 것은 공식기록원들의 최종 견해 도출뿐이었다. 하지만 정근우 기록수정 논란의 최대 쟁점 부분에 대한 기록원들의 생각이 한 곳으로 모아지질 않고 있었다. 바로 홈에서의 타이밍 문제였다. 포수 채상병이 투구를 빠뜨리지 않았더라면 정근우는 홈에서 아웃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패스트 볼)하는 쪽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홈스틸) 쪽의 견해가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한가지 사건을 놓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처럼 상반되게 나타난 이유는 뭘까? 그것은 기록판정을 내리기까지 과거에 쌓아온 기록원 각자의 경험 축적과정이 서로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정근우의 홈스틸 인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엔 대충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상대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근우가 그 상황에서 홈으로 뛰어들어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포수 채상병도 정근우의 모습이 눈에서 가까워지자 다급한 마음에 포구 미스를 하고 말았다. 둘째, 채상병이 정상적인 포구를 했다 치더라도 달려들어오는 3루주자에 대한 태그동작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림상 홈 플레이트가 포수 바로 앞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타자의 배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거리확보(배터스 박스) 관계로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3루주자의 슬라이딩 스피드다. 주자가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슬라이딩의 속도가 생각보다는 엄청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 발 빠른 주자들의 슬라이딩 스피드는 가히 마하급(?)이다. 수년 전 홈에서 보았던 이종범의 슬라이딩은 어제 본 듯, 아직까지도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서너 발자국 앞에서 공이 도달, 포수가 기다렸다가 태그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포수가 잡은 공을 가지고 태그에 들어가는 그 짧은 이동시간에 이종범의 손은 이미 홈 플레이트 바깥쪽을 쓸고 있던 기억이다. 자질구레한 기타 얘기들은 빼더라도 이상의 세 가지 이유를 종합해보면 야구적으로 살았을 것이라는 논리와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반면 홈스틸을 인정할 수 없다는 쪽의 근거 논리는 아웃상황 가정을 밑바탕으로 한 타이밍에 있었다. TV 리플레이 화면을 통해 보면 더더욱 타이밍의 차이는 확연해 질 수밖에 없는 법. (가끔은 리플레이가 오히려 사실을 왜곡시켜 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전에도 말했듯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가상으로 그 결과를 유추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불확실한 일인지, 정근우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가상판단의 근거는 결국 해당 기록원의 과거 경험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결과로 돌아와 기록위원회와 사무처는 정근우의 기록을 홈스틸로 수정하는 문제를 고심 끝에 부결로 결말지었다. 기록 수정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떠안고 있는 기록위원회가 정정합의 도출에 실패한 사안을 쉽사리 번복하는 쪽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개인기록에 포함되는 정규시즌 경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팁. 이렇게 해서 정근우의 홈스틸 발굴(?)은 세상에 나오기 일보 직전에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선수들의 수많은 플레이들을 이론적으로 재단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일에는 늘 두 가지의 고민이 함께한다. 야구적인 해석과 이론적 분석의 충돌이다. 모든 것을 야구적으로 해석하자면 원칙이 무너진다. 반대로 이론적 분석에 치중하면 현장의 생각과는 괴리감이 있는 기록으로 흐르게 된다. 정근우의 홈스틸 기록 해프닝에서 보듯,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늘 방황하고 서성거려야 하는 것이 어쩌면 공식기록원의 참모습일는 지도 모르겠다. 윤병웅 KB0 기록위원회 1군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