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주치의는 정말 인기 없는 ‘돌팔이’인가 초창기에 내가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를 한다니까 ‘병원은 어떻게 하고 야구단을 따라다니느냐’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환자들이 내가 병원을 내팽개친 줄 알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치의의 노릇이 선수의 부상이나 병을 치료하는 일에 끝나는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감독의 의학적 판단을 도와주는 일이다. 치료는 다음 문제다. 우리나라 스포츠의학의 권위자로 전 스포츠의학회 회장이며 고려대 교육대학 원장을 하신 김성수 박사가 계신다. 캠퍼스에서는 사범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만, 독일에서 스포츠의학을 전공하고 돌아오신 엄연한 의사의 신분이다. 국가대표 배구팀을 비롯해 한일합섬 배구팀 등 숱한 팀의 주치의를 맡았는데, 진료실도 없으면서 주치의 일을 훌륭하게 해낸 것으로 의학계에 정평이 나 있다. 주치의라고 해서 허구한 날 선수단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며, 진료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주치의는 감독의 의학적 판단을 도와 팀 전력이 최상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면 된다. 병원을 팽개쳤다고 항의할 필요도 없고, 어느 신문 기사에서 주장한 것처럼 ‘임 원장이 김 감독과 친구사이여서 해태 선수들은 감기, 설사에 걸려도 임 원장의 소견이 없으면 인정되지 않는다’며 꼬집힐 이유도 없다. 모두 주치의론을 잘못 이해한데서 나온 소치니까. 나는 분명 한 사람의 의사다. 선수가 아프다고 하면 선수이기 이전에 환자로서 치료나 휴식기간을 충분히 주고픈 생각이 굴뚝같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현실은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페넌트레이스는 목숨을 건 전쟁이다. 중요한 선수가 결장하면 그 날 전쟁은 끝장일 수도 있으며, 여러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팀웍이 엉망이 되거나 팀의 사기가 떨어지면 그 해 농사를 아예 포기해야할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수가 아프다고 무작정 쉬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선수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어렵다. 팀을 먼저 생각하자니 선수가 울고, 선수들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팀이 또 운다. 특히 주치의는 선수들에게 인기가 없다. 그들이 다른 병원이나 의사를 찾으면 스타랍시고 융숭한 대접을 해주는데, 주치의는 잔소리, 쓴소리만 해대니 좋아할 건덕지가 눈꼽 만큼도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가끔 ‘형편없는 돌팔이’로까지 매도당하는 판국이니. 끌끌. 그래도 풋내기 신참이나 중고선수보다 고참선수들이 고마울 때가 많다. 신참 때는 감독친구여서 경원하다가, 일약 빛나는 주전이 되면 스타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늘 나로부터 ‘아이 취급’을 당하니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러나 십수 년 간 동고동락을 같이 해온 고참들은 다르다. 자기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탓인지 나를 대한 태도가 사뭇 고맙다는 기미다. 진즉 내 말을 귀담아 들었으면 좀 더 나은 선수생활을 했을 텐데,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들 고참이 코치가 되면 한 끗발 더 오른다. 아예 스승 모시듯 한다. 이심전심으로 나와 ‘의기투합’, 나보다 더 선수들을 닦달한다. 그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네. 진즉 속 좀 차리지”하면 “글쎄 말입니다. 후회 막급입니다. 저는 그렇게 못했지만 후배들은 제대로 알아들어야 할 텐데요”라며 머쓱해한다. 요즘 들어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감독의 호령 한마디에 혼비백산했던 신참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됐으니 말이다. 해태 타이거즈와 함께 한 20년 세월이 어찌 짧을 수만 있겠는가. 그 세월 동안 즐거운 기억, 괴로운 사건이 한두 가지였겠는가. 이런저런 경우를 당하는 과정에서, 나라고 다른 의사들처럼 ‘편안하게’ 선수가 아닌 일반 환자들을 대하고픈 생각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이 ‘주치의 그만두면 대접받는 의사가 될 텐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입방아를 찧을 때는 정말 심사가 요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도 버리기 아까운 추억일 뿐이다. 내 진심이 선수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을까 하는 조바심, 그리고 주치의로서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자책감만 든다. 다시 한 번 하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1999년 4월 20일, 미국 산호세병원의 트리브 박사(맨 왼쪽)와 필자(오른쪽)가 이강철의 수술문제를 놓고 상의를 하고 있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