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14)1986년 해태의 우승 뒤에 숨은 얘기
OSEN 기자
발행 2008.01.29 10: 03

(14)1986년 해태의 우승 뒤에 숨은 얘기 지금 와서 밝히는 얘기지만 1986년 10월 22일, 대구에서 해태버스에 불이 나자 김응룡 감독은 우승을 예감했던 것 같다. 그 때가 선동렬과 한대화, 이순철 세 사람을 내 차에 직접 태우고 대구까지 이동했던 바로 그 해이다. 아침 새벽에 광주에 돌아오던 길, 불탄 버스의 기사가 다른 버스를 가지러 광주에 따라 왔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도 개업의로서 환자를 버리고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해태 주치의를 한답시고 병원을 버리고 게임 때마다 따라다니는 줄 알고 ‘미친 의사 아니냐’는 말을했다고 들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떻게 게임 때마다 정형외과 개업의가 따라다닐 수가 있겠는가. 그런 나에게 그 해 우승 전날 김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게임 전후해서 내가 김 감독에게 먼저 전화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징크스 중에 내가 끼어들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게임을 코 앞에 두고 전화를 걸어 나에게 말을 시킨다. “안 올라 올 거야?” 슬슬 웃으며 한 내 대답은 이랬다. “나도 개업한 놈인데, 다음 게임에나 가지” 그런데 김 감독 말이 “아마, 내일은 끝 날거요” 하면서 굳이 올라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서울로 갔다. 숙소에 도착해 김 감독에게 “KBO 수입도 있을 텐데 한 게임 더하지?”했더니 “남의 속 타는 줄 모르고 한가한 소리한다”고 일침을 주었다. 식사하고 운동장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버스 출발시간을 확인한 후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 시간 맞추어 내려가 보니 구단 버스가 호텔 앞에 서 있는데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처럼 묘한 긴장감이 주위에 맴돌았다. 버스에 올라가보니 정말 차안 풍경이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 선수와 코치들이 나를 보고 별스럽게 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까지 게임하러 가는 버스에 선수, 코치 외에는 아무도 타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나는 그들의 놀라운 표정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만약 그 때 우승을 못하고 1패를 했다면 또 하나의 징크스가 생길 뻔 했다. 어쨌거나 그 다음부터 나는 언제나 구단버스를 마음 놓고 탈 수가 있었다.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게임이라기 보다는 분위기가 완전히 축제 같았다. 모두가 당연히 오늘 끝나지 않느냐는 식이었다. 모 방송국 해설자가 나에게 오더니 “원장님, 오늘 게임 끝나겠어요”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까 정말 오늘 끝날 것 같애”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그 해설자가 상대팀 선수들을 가르키며 왈, “해태 선수들하고 얼굴색을 비교해 보십시오. 해태 애들은 전투의욕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는데, 쟤들은 긴장하다 못해 얼굴색이 누렇게 떴어요. 저 감독 보십시오. 어깨가 움츠러들었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하여튼 우승은 즐거운 것이며 축제 그 자체였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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