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니콘스 구단의 공중분해와 7개 구단으로의 회귀라는 사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목전에 두었던 1월 30일, 한국프로야구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를 대신할 제8구단 창단을 선언함으로써 극적으로 리그 파행운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로운 구단으로 등장한 센테니얼은 종전 기업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광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네이밍 마케팅(Naming Marketing)이라는 다소 생소한 기법의 운영방식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한 현실적 성공 가능성 여부가 세인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 동안 아무도 시행해보지 않았던 방식인 만큼 야구관계자나 팬들 모두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 뒤섞인 채 다가오는 2008시즌의 변화된 환경에 아직은 낯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요즘이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야구계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추구는 비단 하드웨어적인 면에만 국한된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월초 열린 8개 구단 단장회의에서는 경기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려는 기운이 감지되었는데, 이때 다뤄진 대표적인 안건들을 살펴보면 페넌트레이스 1위 팀에 대한 평가절상 방법, 포스트 시즌 경기수의 확대 고려, 무승부제도의 폐지 검토 등이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무승부제도의 폐지 검토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한국프로야구에서는 팬들의 귀가시간, 두텁지 못한 투수층, 선수단 운용의 어려움 등을 고려, 일정 이닝이나 일정 시간을 초과하는 경기를 중도에 갈무리 짓도록 하는 무승부 경기제도를 채택해 왔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확충된 대중교통 편의시설과 승용차 보급률의 증가로 팬들의 귀가시간 걱정이라는 명분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다만 얇은 선수층, 특히 가용 투수 수의 부족과 이동일에 얽힌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긴 하지만, 변화와 도약을 바라는 야구팬들의 눈높이와 기대치는 해가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이래 정규시즌에서 지금까지 15회 연장전을 치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경우는 총 12번(KS 4차례 포함)이며, 가장 최근의 15회 무승부 경기는 역대 최장시간 경기(5시간 45분)로 올라있는 잠실의 두산과 LG전(2001년 5월 6일)이다. 특이한 것은 12번의 15회 무승부 경기 중, 해태가 무려 8차례(KS 2번 포함)나 연루되어 있다는 점.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도록 15회 연장이 감감 무소식인 이유는 따로 있다. 2003년부터 연장전이 12회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12회 이닝제한이 적용된 이후 무승부 경기수는 적게는 매년 10경기에서 많게는 24경기 정도가 기록되어 왔다. 무승부 경기는 공정한 승률계산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측면은 팬들에게 장시간 관전의 수고에도 읽다가 만 책처럼 정작 돌아가는 길엔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허탈함만을 안긴다는 점이었다. 만일 올 시즌부터 무승부 경기제도가 없어진다면 이들 경기들이 끝장을 보게 된다. 메이저리그의 최장이닝 경기는 연장 25회다. 1984년 5월 8일과 9일, 이틀간에 걸쳐 벌어졌던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기(시카고의 5-4 승리)로 소요시간은 무려 8시간 6분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처럼 연장 12회 무승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물론 무승부 경기가 없어지면 그에 따른 폐단도 따른다. 우선 평균적인 경기 소요시간이 대폭 길어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다. 경기가 마냥 늘어질 경우 다음날 경기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론 익일 경기뿐 아니라 이후 몇 경기에 걸쳐 투수 운용상 지장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에 메이저리그는 마냥 경기가 늘어질 경우를 대비해 다음날 새벽 1시 이후에는 새로운 이닝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커퓨타임(curfew time, 통행금지시간)을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 경기는 일시정지경기가 된다) ‘기록과 기록사이’의 연재를 시작하던 2005년 1월, 그 첫 번째 화두로 경기시간 제한이 주는 아쉬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골자는 야구의 수많은 전설이 탄생될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시간제한과 무승부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프로야구 역사에 올라있는 열두 차례 15회 무승부 경기의 끝자락엔 과연 무슨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제 그 마지막 페이지를 열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무승부 경기제도를 폐지한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무승부 경기를 구경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조건 아래서의 경기라면 무승부 경기를 다시 보기 어렵겠지만, 하늘이 하는 일만큼은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일. 바로 날씨가 만드는 무승부 경기는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 정식경기가 성립된 이후 동점 상황에서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고,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주심이 강우콜드게임을 선언했다면 그 경기는 야구규칙(4.10)에 따라 무승부경기(일시정지경기로 넘어가는 상황은 제외)로 기록된다. 이러한 경기는 규칙상 재경기를 치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국프로야구의 실정에서 재경기까지 치르는 것은 현재로선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