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최상덕, 프랭크 조브 박사와 수술 트레이드는 프로의 냉엄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때로는 당사자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마음 내키지 않는 트레이드로 인해 선수생활마저 위협받는 경우도 많다. 1996년 최상덕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해태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박재홍이 현대 아마추어 팀에 있다가 프로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최상덕이 트레이드라는 파편을 맞은 것이다. 두 구단 간에 변칙(?) 합의가 있었든 아니든, 최상덕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는 해태로 이적할 수밖에 없었다. 최상덕의 해태 생활은 초입부터 난항이었다. 투수들에게 흔한 ‘피처스 엘보’가 최상덕이라고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우측 팔꿈치 내측 불안정 이라는 병명까지 달라붙어 결국은 수술을 해야 하는 곤궁한 처지에 빠졌다. 1996년 9월15일. 나는 최상덕과 미국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로선수들이 하도 뻔질나게 드나든 탓에 우리에게도 낯익은 미국 LA의 프랭크 조브 박사를 찾아 최상덕을 내보였다. 이틀 후 노신사인 조브 박사가 내 소매를 끌어당겼다. 기왕이면 수술을 참관해보라는 권유였다. 남의 병원에서 스크럽을 하고 수술복을 입다보니 이건 영락없이 수련의다. 꼼꼼하게 집도 하면서도 조브 박사는 내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설명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술 3일 후 최상덕과 LA 공항 근처의 조브 박사의 진료실을 해태 현지 직원과 함께 방문하였다. 조브 박사는 최상덕의 수술 부위를 점검 한 뒤 나에게 열심히 수술 후 처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6개월간의 재활 프로그램을 주었다. 그리고 병원을 나오려는데 모구단 선수 2명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조브 박사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왠일일까?’ 했는데 그 선수들을 위하여 현지 직원이 통역을 하는데 의학용어를 잘 이해 못하니 의사소통이 확실하게 되지않아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나는 생활영어는 잘 하는 편이 못되지만 의학용어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정도는 되니 도움을 줄 수가 있었다. 해태 시절 김상훈, 이순철, 이강철, 최상덕 선수들과 진료를 위헤 미국을 동행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지금 생각으로도 꼭 외국에서 수술을 한다면 최소한 주치의가 동행할 필요가 있다. 의학적 자문 및 수술 후 처치에 대하여 확실한 의사소통으로 정확한 재활프로그램을 받아와 시행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최상덕은 정말 지루한 재활 프로그램을 성실히 수행하여 부상을 극복한 좋은 본보기라는 생각이 든다. 마운드에 믿음직하게 서서 투구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있으면 감회가 새롭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