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단은 팬들 마음 속의 보물
OSEN 기자
발행 2008.02.13 11: 05

지난 600년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6.25사변 등의 전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던 국보 1호 ‘숭례문’이 사실상 사라졌다. 그리고 화마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숭례문의 최후를 넋 놓고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숱하게 숭례문 옆을 지나쳤으면서도 그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국보급 문화재라는 이름표 이상의 정서나 감회를 깊이 헤아려본 적이 없었는데, 정작 이렇게 잃고 나니 그 허망한 마음이 너무도 크다. 정부 대변인까지 급히 나서 국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국보 1호 숭례문이 그 동안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숭례문이 불타는 현장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국민들의 마음속엔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개인적인 재산상의 손실이나 인명피해가 없었음에도 국민들의 마음을 그토록 참담하게 만든 그 무엇은 바로 숭례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그 안에 담긴 역사성이었다.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는 현대 유니콘스가 영원히 소멸될 수도 있는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다른 기업으로의 인수나 재창단이 아닌, 말 그대로 공중분해 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현대’라는 한 구단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단순히 프로야구팀 숫자 하나가 줄어드는 외형적 현상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단이 없어짐으로써 어쩔 수 없이 생겨날 실직 선수나 프런트는 현실적인 문제고, 그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간 ‘현대 유니콘스’라는 구단을 사랑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왔던 많은 팬들이 짊어져야 할 상심과 공허함이었다. 밥 먹는 시간보다 야구 보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수많은 야구팬들, 특히 현대 팬들의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하나의 야구 팀이 역사성을 가지고 그 명맥을 이어간다는 것은 비단 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 역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1918년 이후 밤비노의 저주(?)에 묶여 86년간이나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보스턴 레드삭스. 그러나 2004년 가을, 마침내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꺽고 그 저주에서 풀려나던 날, 보스턴 팬들은 보스턴의 우승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뜬 올드 팬들을 향해 레드삭스의 우승소식을 전했다. 아버지 대를 넘어 할아버지 대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86년은 보스턴 팬들의 역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보스턴의 우승이 그들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 준다거나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팬들이 우승을 마치 자기가 일궈낸 일인 양,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팬들에게 있어 보스턴은 지나가는 일개 야구팀이 아니다. 보스턴은 팬들의 마음에 늘 살아 숨쉬는 생활의 구심점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다. 거기에 100년이 넘는 시간적인 역사성이 더해지면서 팬들에게도 대를 잇는 끈끈한 전통이 생겨났던 것이다. 구단이 1, 2년 반짝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모든 팀이 다 명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전통과 역사성이 반드시 겸비되어야 한다. 만일 팀 명칭이나 구성원이 바뀌었다고 해서, 또는 새로 맡게 된 팀의 이전 성적이 부끄러울 만큼 형편없다고 해서 구단이 본래 갖고 있던 역사성과 전통성을 부정한다면 명문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잠깐 이야기를 갓길로 돌려, 한국프로농구는 이번 시즌(2007-08)에 돌입하기 전, 지난해까지 뛰었던 각 팀 외국인선수들의 재계약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필요이상 높아진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을 낮추고 전력을 평준화하자는 취지에서 실행한 것인데, 이유야 어떻든 그 결정은 지금까지 시간을 두고 쌓아온 팬들의 팀에 대한 정신적 기득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팬들 대다수가 그와 같은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던 까닭은 비록 외국인 선수라 해도 그를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이 성원하는 팀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던 터라, 판을 송두리째 뒤엎는 식의 갑작스런 강제 구조조정(?)에 거부감이 일었기 때문이다. 나라엔 보물로 삼아 아끼는 국보가 있듯, 야구팬들의 마음에는 세월이 흘러도 대를 이어 쉽게 변치 않을 보물과도 같은 저마다의 사랑하는 팀이 들어있다. 종목을 막론하고 리그이건 팀이건, 전통이 살아있어야 팬들의 더욱 뜨거운 성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에 머지않아 새로운 명칭의 팀이 또 하나 탄생한다. 하지만 인수가 아닌 창단이라고 해도 현대라는 팀의 전통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스에서 시작, 1985년 청보 핀토스, 1988년 태평양 돌핀스 그리고 1996년 현대 유티콘스로 이어져 온 현대야구단의 명맥이 2008년 센테니얼을 모태로 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또 한번 변신하겠지만, 승률 1할대 꼴찌의 수모, 장명부의 시즌 30승, 15이닝 0-0 무승부, 정명원의 노히트노런, 박경완의 4연타석 홈런, 빗속 9차전까지 갔던 2004 한국시리즈, 통산 4회 우승의 위업 등과 같은 전신(前身) 포함 현대가 쌓아온 무수한 돌탑들은 팀의 운명과 결국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 팬들의 운명까지도 함께 달려 있는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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