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21)김응룡 감독, “아무도 없어야 일본말이 돼”
OSEN 기자
발행 2008.02.16 11: 17

(21)해태의 우승보너스 여행…대만 거쳐 일본으로 1989년 김응룡 감독과 이상국 부장(전 KBO 사무총장), 그리고 나 세 사람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 보너스 여행이었다. 겸사겸사 이듬해 전지 훈련지를 물색하기 위해 대만을 돌아 선동렬, 김성한의 유니폼과 야구방망이, 글러브를 전달하려고 일본 도쿄돔에 있는 야구체육박물관에 들렀다. 대만과 국교가 단절되기 전이었으니까 여행객들도 참 많았던 시절의 얘기다. 대만 여행객들이라면 쉽게 기억할만한 곳이 있다. 바로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새마을 상회’다. 그곳 신 사장님의 친절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다. 그 상회 주변 장급여관에 숙소를 정한 뒤 식당가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김응룡 감독과 타이페이 그랜드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김 감독의 싸인을 받는가 싶더니, 어디에 묵고 있느냐,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도 되느냐며 북새통이다. 그 장면을 본 대만 현지인들도 김 감독을 알아본 듯 마냥 신기해한다. 대만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했다. 하네다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다. 입국신고를 위해 세관 및 면역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인쇄된 활자가 깨알만 했다. 일본어도 제대로 모르는 판에 글씨조차 가물가물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바로 그 때, “뭐하고 있어? 빨리 쓰지 않고.”김 감독이 성화를 부린다. “뭐, 보여야 쓰지. 글씨가 너무 적어 어디에 이름을 써야할지 모르겠어.” 그러자 김 감독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나이도 나보다 어리면서 그렇게 안보여?”하는 것이다. 정말 무식한 것도 죄지만, 늙은 것은 더 큰 죄인 것 같다. 겨우 입국 절차를 마치고 로비에 나온 일행은 또 한 번 난처한 일을 당한다. 당시 홍윤표 기자가 연수차 일본에 와있던 중이어서 일행을 마중하기로 했는데 오리무중이다. 전화를 해보니, 벌써 공항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이제 오려나, 저제 오려나. 두어 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리다 못해 숙소인 다이이찌 호텔 행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택시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까지 와서 길에 돈 뿌릴 필요는 없지. 택시대신 공항터미널까지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여기서 또 헤맨다. 어디서 타야하는지, 또 차표는 어디서 파는지. 이런 ‘엄마 찾아 삼천리’가 따로 없다. 터미네이터는 역시 김 감독.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가서 알아 볼 테니.” “같이 가서 알아보지.” “나는 말이야. 아무도 없어야 일본말이 나와.” 그러더니 김 감독은 휭하니 저쪽으로 가버린다. 한참 후 김 감독이 차표를 들고 돌아온다. “따라와. 내가 다 알아놨어.” “거 참, 이상하네. 누가 있으면 왜 일본말이 안 나와?”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입이 안 되면 몸이 있잖아.” 김 감독의 일본어는 고무줄이다. 아니, 그보다 크레믈린에 가깝다. 광주에 와서 일본어학원에도 다니며 꽤나 열심이었는데 사람이 있으면 왜 안 되는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두 번의 ‘홍역’을 치렀지만, 여행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야구체육박물관에 물건을 전달해주러 갔더니, 그곳 사무국장이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김 감독이 “일본사람들 저녁 초대는 뻔해. 아예 회전 초밥집에 가서 요기를 하고 가야해”라며 팔을 잡아끈다. 아니나 다를까. 위스키 한 병을 물에 타서 마시고 몇 점의 안주 정도의 식사로 저녁초대는 끝나고 말았다. 말은 안했지만, 뭔가 허전했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오늘로 일본여행이 마지막 밤인데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하지요?” 이상국 부장의 말에 물기가 묻어 있다. 일행은 긴자 거리로 나섰다. 긴자의 밤길을 해매다 ‘이화’라는 식당을 찾았다. ‘밤참’을 핑계 삼아.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 세 번째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갈비를 뜯고 또 다른 음식접시가 줄줄이 들어온다. 그러나 젓가락 바람이 두세 번 불면 접시가 텅~빈다. 한참을 먹었는데 그래도 양이 안 찬다. 후식으로 떡국 한 그릇씩을 또 비운다. 나오는 길, 이상국 부장왈. “두 분 정말 대단하네요. 아무리 음식 값이 만만치 않다 해도 오늘 저녁 먹은 ‘밤참’값이 한국 룸살롱 술값과 맞먹어요.” 이 부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김 감독왈. “어휴, 이제 잠이 올 것 같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어느 날 한자리에 모인 김응룡 감독(왼쪽), 광주일보 김종태 전 회장(가운데), 필자의 모습.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