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22)‘까치’김정수가 살아가는 이유
OSEN 기자
발행 2008.02.19 15: 49

(22)‘무등산 까치’김정수, “다른 사람들이 생각못하는 공을 던져야지요” 언제나 소문이 말썽이다. 모래알도 때로는 호박만큼 불어난다. 이런 폐단이 있지만, 그러나 소문은 늘 우리 곁에서 떠나는 법이 없다. ‘까치’ 김정수도 그 소문 때문에 피해를 본 경우다. 지금은 어엿한 지도자이지만, 1986년 해태에 입단할 때만 해도 김정수는 정서 불안 한 아이들처럼 차분하지 못하다거나 늘 튀려한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정수 한번 만나서 얘기 한번 해보쇼.” 어느 날 김응룡 감독이 불쑥 말을 꺼냈다. “무슨 문제 있어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엄살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요.” “한번 보내세요.” 김정수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정수야. 이제 결혼도 생각해봐야 않겠냐?” “속 모르는 소리 마십시오. 원장님.” “왜?” “제 집안 복잡한 것 원장님도 대강 아시죠? 저 혼자로 충분합니다. 어느 여자를 데려다 마음고생 시키며 편히 운동할 수 있겠습니까?” “어쭈, 속 깊은 척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딜?” “극장에 좀.” 김정수가 극장엘 가기는 갔었나 보다. 아, 글쎄. 그런데 나왔다 들어갔다 세 번 씩이나 하고나니 영화가 끝났더라는 것이다. 이래서 주위 사람들이 정서불안이라고 하는 건가, 일리가 있었다. “정수야, 너 야구하는 것 보면 어떤 때는 볼이 기막히게 컨트롤 되다가도 어떤 때는 춤을 추던데 무슨 이유가 있냐?” “원장님, 웬 모르시는 말씀?” “뭐가?” “원장님, 그 게 제가 살아있는 이유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공을 던지면 안 되지요. 타자의 예상을 깨뜨려야죠. 헷갈리게 해야 못 치죠.” “거참, 일리가 있네.” 그 뒤 김 감독에게 김정수의 얘기를 그대로 전했더니, 김 감독은 “정수다운 얘기요. 그런데 정말 정수가 던지고 싶은 곳에 정확히 공을 던지는지 그걸 모르겠단 말이요.”라고 받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검증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김정수는 여전히 들쭉날쭉이었다. 어느 날은 기막히게 던져 ‘무등산 까치’라는, 이현세의 만화 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을 달고 스포츠지 1면 머리를 장식했는가 하면, 어느 날은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1~2회도 못 버티고 내려오곤 했다. 세월이 흘러 김정수가 결혼을 하게 됐다. 그러자 겨울훈련도 열심히 하고 생활태도 또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를 본 김 감독이 “장가는 잘 가야 해요.”라고 흐뭇해하는 거였다. “무슨 말이요?” “정수 보십시오. 많이 달라졌잖아요.” “마누라 잘 얻은 모양이네.” “은행에 다니는 여자들이 살림도 잘 하고 똑똑해요.”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가 보다. 김 감독 자신이 한일은행에 오래 근무한 탓인지, 은행원에 대한 점수가 후한 편이다. “그렇게 달라졌어요?” “앞으로 성적을 한번 지켜보세요. 결혼 전 보다 훨씬 나아질 거요. 거기까지는 좋은데 내가 보기에는 정수가 마누라한테 꼼짝 못하는 것 같아요. 허허허.” 꼼짝이야 못 할리가 있겠는가마는, 어쨌든 김정수는 결혼과 함께 정신적인 안정을 찾았고 운동에 관해서도 김 감독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것 같았다. 대저 공처가들이 딸딸이 아빠라던데, 그래서 김정수도 딸딸이 아빤가. 김정수의 경우를 봐서도, 소문은 그대로 소문일 뿐이다. 소문으로 인한 잘못된 편견에서 해방되려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게 상책이다. 세월은 참 무섭게 흘러간다. 어디로 튈줄 모르던 김정수도 이제 프로야구 지도자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지난 정이 있었던지 가끔씩 나를 찾아와서 옛 이야기나 자기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아픈 곳도 치료하고 그렇게 살갑게 구는 처지가 되었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1987년 한국시리즈 최종 4차전에서 김정수가 구원승을 따낸 직후 포수 김무종과 감격의 포옹을 나누고 있다.(제공=한국야구위원회)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