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이순철의 남다른 사연 인생이란 게 그렇다. 나이가 들면 시든다. 사소한 일에도 서글퍼지고 화내는 일이 잦아진다. 특히 운동선수들의 경우 ‘선수인생’이 짧아 쉬 시든다. 아예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선수들도 많다. 상종가는 길어봐야 몇 년에 불과하다. 최고의 기량을 보이다가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면 이런 순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정에 화려했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고. 홈런타자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김봉연이 선수시절에 “나이에는 거짓이 없는 것 같아요. 작년만 하더라도 전날 술을 마시고 경기를 해도 담장을 훌쩍 넘겼는데, 요즘은 넘어갈 듯 하면서도 플라이 볼이에요. 정말 한해가 다르네요.”라고 푸념하던 말이 실감난다. 그쯤 되면 플레잉코치 제안이 들어오고 결국 유니폼을 벗어야할 시기가 된다. 이순철 얘기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1985년 프로에 입문할 당시만 해도 이순철은 상종가였다.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매해마다 각종 기록도 양산해냈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해태 구단 살림 때문에 연봉협상 시기만 되면 삐걱거렸다. 김응룡 감독이 내게 처음으로 싫은 소리를 하게 한 장본인도 다름 아닌 이순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구단과 삐걱거리는데도 내가 이순철만 편애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순철은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운동을 해왔다. 그래선지 성격은 조용하다못해 내성적이다. 게임이 잘 안 풀리는 날이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야, 순철아.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하게 나와라.” 내 딴에는 그를 생각한답시고 무시로 이런 전화를 건다. 그러나 성사여부는 늘 반반이다. 그날 게임에서 안타를 치면 두 말 없이 “예.”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예 대답조차 없다. 그래서 심지어는 “야! 임마. 야구 잘 될 때는 다른 사람하고 밥 먹고, 못할 때는 내가 사면 어때?”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이러는 나를 보고 이순철의 양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럴 정도였으니, 이순철과의 연봉협상에서 진척이 없으면 구단에서는 으레 내게 전화를 했고 실제 내가 개입한 적도 있다. 이순철의 연봉협상은 전지훈련에도 몇 번이나 영향을 미쳤다. 며칠 후면 전지훈련을 떠나야 하는데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 때문에 군단은 구단대로 전지훈련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엄포를 놓았고, 이순철은 그대로 전지훈련을 안갈 수도 있다고 맞불을 놓곤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중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철에게 전화를 건다. “야! 야구 안 할거야?” 여전히 저쪽에서는 대답이 없다. “돈보다는 명예야.” “….” “이순철이 유명선수여서 존재가치가 있지, 돈 얼마 더 받으면 뭐하냐?” 지금 생각해봐도 결코 프로답지 않은 설득이다. 물론 이순철이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의 모친을, 결혼 후에는 부인을 동원하는 다분히 ‘프로페셔널’한 압박 작전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모습들이 다른 선수들에게는 ‘임박사는 이순철이만 좋아하는’ 걸로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면을 빌려 이번 기회에 솔직한 내 심정을 털어낸다. 이순철이 해태에 들어와 몇번의 우승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항상 구단으로부터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그럴 때마다 내가 구단의 처지에서 그를 끌었다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못된다. 사랑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편애는 결코 아니다. 1996년 해태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선동렬을 일본에 보낸 어려운 상태에서 일궈낸 결실이었다. 그러나 구단과 이순철과의 불편한 관계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한 합숙훈련에서 이순철을 빼버린 것이다. 합숙훈련이 시작된 첫 날. 이순철이 나를 찾아왔다. “너, 어디 아프냐?” “아뇨.” 대화는 그것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순철이 합숙명단에서 제외된 줄을 몰랐다. 며칠 후 김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이나 합시다.” “합숙훈련 안 해요?” “잠깐, 식사도 못해요?” “사실, 오늘 병원식구들과 바닷가 쪽으로 나가 회식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되면 그쪽으로 오시오.” “다시 전화 합시다.” 몇 시간 후 김 감독이 광주에서 1시간30분쯤 걸리는 무안까지 손수 차를 몰고 왔다. 병원식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하루를 재미있게 보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바로 한국시리즈 엔트리를 제출한 날이었다. 합숙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이순철이 그 명단에 끼어있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김 감독은 나에 대한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전한 것이다. 20여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면서 이심전심, 말보다는 느낌으로 지내온 처지였으니 김 감독의 배려였던 것이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