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하얀 종이 위의 매직(Magic), 야구기록법
OSEN 기자
발행 2008.02.21 15: 21

봄이 되면 긴 겨울잠에서 곰이 깨어나듯, 매년 이맘때면 내내 잠잠했던 KBO 기록실의 전화벨 소리가 바쁘게 울려댄다. 1983년 대한체육회 강당을 빌려 일반 야구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첫 야구기록 강습회를 연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빼놓지 않고 매년 정례적(2월말~3월초)으로 개최되어 온 까닭에 야구기록에 관심을 갖고 있던 팬들의 궁금증이 한곳으로 몰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야구가 아닌 여타 구기종목에도 경기 기록법은 있다. 그럼에도 유독 야구가 ‘기록경기’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이유는 경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선수들의 방대한 통계자료 덕분이다. 축구나 농구도 다방면에 걸쳐 개인성적을 엄연히 집계하고 있긴 하지만 팀이 이기고 지는 경기결과에 치여 팬들이나 언론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야구는 좀 특별(?)하다. 야구경기 역시 팀의 승패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이슈화 될 수 있는 선수들의 굵직한 기록이 때에 따라서는 팀의 경기 결과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본다. 2003년 이승엽의 56호 아시아홈런 신기록, 2006년 송진우의 200승 달성, 2007년 양준혁의 통산 2000안타 달성 등과 같은 개인기록들이 야구계를 넘어 범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곤 했던 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핀트가 조금 어긋난 이야기지만, 소속 팀이 경기에 졌음에도 당일 경기에서 4타수 4안타를 몰아친 선수의 목욕탕 속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는 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록(Recording)이라는 것이 승패 못지 않게 선수 개개인으로서는 꼭 챙기고 싶어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선수들의 개인기록은 아무런 뿌리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절차와 그런 절차를 종이 위에 도식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선수들의 기록이 최종 완성되는데, 그 과정(Scoring)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기록강습회인 것이다. 야구기록법은 말이나 문장이 아닌, 숫자와 부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선수들의 포지션은 1~9까지의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 표시하고, 그 선수들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잘잘못, 투수로부터 시작된 야구공의 이동경로 등은 부호와 도표를 통해 종이 위에 그려지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이렇게 해서 완성된 경기기록지는,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 가서도 그 때 벌어진 상황에 대해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의 복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요즘 부쩍 그 숫자가 늘어난 케이블 방송가에서는 재연(再演)을 다루는 방송물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TV를 통해 또는 현장에서 경기를 직접 관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거 일어났던 상황을 볼카운트 하나까지도 세세하게 재연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야구기록법의 숨은 매력이라고 하겠다. 그 동안 기록강습회를 통해 수많은 팬들이 야구기록법을 배워나갔고, 수강과정이 계기가 되어 일부는 프로야구의 영역 안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또한 근자에 들어서는 상당부분 활성화되고 있는 사회인야구의 기록원 배출과 재충전에도 일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록강습회는 야구기록에 대해 평소 몰랐던 부분, 아리송했던 부분들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내 앞에 놓여질 하얀 공식기록지 위에 내 손으로 직접 야구경기를 그려나가는 재미에 흠뻑 빠져보자. 새로 알게된 기록법은 시즌이 시작되고나면 완성된 기록지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영원히 기억속에 간직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달랑 종이 한두 장.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야구기록법의 매력이자 종이 위의 매직(Magic)이 아니겠는가? 예년처럼 올해도 총 3일간(2월29일~3월2일)에 걸쳐 건국대학교에서 기록강습회가 열린다. 1983년 이후 올해로 27회가 된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한 해의 프로야구를 시작하는데 있어 팬들과의 조우, 그 첫 장을 여는 행사가 기록강습회인데 그 동안의 추이를 돌아보면 기록강습회를 찾아주신 팬들이 많았던 해가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던 해였음을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강습회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남녀노소 가림 없이 기록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의 참여가 줄을 잇고 있음에, 지난 해에 이어 올 시즌도 팬들의 변함없는 뜨거운 성원이 계속될 것 같다는 부푼 기대를 한껏 가져본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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