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코트의 타미카 캐칭(29)를 꿈꾸던 장예은(21. 전 우리은행)이 새 인생을 설계 중이다. 그녀를 만난 곳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마르페 스포메니 스포츠 클리닉. 오전 훈련을 마치고 스트레칭 중이던 장예은은 예전 보다 다소 야위어 보였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돼요. 근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달리기에 필요한 체력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장예은은 2006 W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우리은행 1순위)로 화려하게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3시즌을 보내는 동안 평균 1득점, 1튄공잡기라는 초라한 기록만을 남기고 맘껏 코트를 누벼 보지도 못한 채 농구와의 인연을 접었다.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더 이상 우리은행에 있을 수 없었어요. 관두겠다고 팀을 나오자마자 여러 실업 팀과 대학에서 오라는 제의가 있었죠. 하지만 제 처지에 대학으로 갈 순 없었어요. 결국 김천 시청으로 갔죠. 그런데 거기서도 여건이 되지 못했어요.” 농구를 그만둔 뒤 무엇을 할까 인생계획을 세울 틈도 없이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상대는 우리은행 입단 이후 줄기차게 육상 한번 해보라던 이준 원장(전 육상 국가대표 코치)이었다. 선일여고 시절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만 들었던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준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 전문 클리닉에서 육상 선수로 거듭나기 위한 몸 단련에 나섰다. “들어오자마자 근력 테스트를 받았어요. 몇 달 운동을 쉬어서 지금은 떨어졌지만 조금씩 올라오고 있어요. 쉬어서 그런지 힘들긴 한데요. 그래도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인지 의지도 생기고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그녀가 처음 운동을 접하게 된 건 농구가 아닌 육상이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달리기 대회만 나가면 1등이었어요. 그래서 육상 선생님들이 제가 4학년 때 농구를 하겠다고 나서자 무척 말리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왜 농구를 했는지(웃음).” 뛰는 것 자체가 싫어 육상 지도자들을 피해 다녔지만 붙잡혀서 대회출전만 하면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는 그녀는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도 외면하고 농구공을 잡았고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육상 트랙을 선택했다. “어머니는 원래 하던 육상을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대단한 기록을 세웠을 거라며 아쉬워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금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몰라요. 물론 지금은 소속도 없이 자비로 훈련을 하고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요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시는 주변 분들을 봐서라도 이제 여기에 승부를 걸 겁니다.” 장예은은 선일초등학교 시절 덩크슛까지 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 했지만 신장이 174cm로 농구 선수로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 오히려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1988 서울올림픽 3관왕이자 20년째 세계 단거리(100m , 200m) 신기록 보유자인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1959~1998)가 떠올랐다. 긴 하체와 작은 얼굴, 거기에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육상선수로는 더없이 완벽한 체형이다. “200m와 400m를 제 주종목으로 결정 해 주셨어요. 아직 정식대회 출전 경험도 없고 연습도 하지 않고 기초 체력만 다지고 있어 기록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어요.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저도 무척 궁금해요. 솔직히 걱정도 되고.” 스무 살이 넘어 육상에 입문해도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지만 이준 원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순발력과 체형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확신했다. “주변에서‘넌 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셔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한국 육상의 한 획을 긋고 최고의 자리에 서는 것이 제 목표죠.” 그래도 농구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 않느냐는 물음에“더 이상 농구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짧게 잘라 말했다. 앞으로 선수등록을 마치고 8월에 열리는 전국체전 지역 예선 통과가 그녀가 넘어야 할 첫 단계다. 한국 여자 단거리의 한국기록은 100m는 1994년, 200m는 1986년, 그리고 400m는 2003년 이후 신기록이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 침체되어 있는 한국 단거리의 새로운 기대주로 바람을 일으키며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녀의 이야기 한 구절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렇게 하기 싫다고 안하겠다고 안하겠다고 도망 다녔는데 결국 하게 되네요. 제 자리가 여기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거죠(웃음).” 우리네 인생 속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농구는 무엇이며 육상은 무엇으로 기억 될까? 모쪼록 오는 10월 전국 체전 출전 명단에‘장예은’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볼 수 있길 기대하며 거기에 메달까지 목에 걸게 되길 희망한다. 장예은 파이팅!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