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의 “얼음 땡” 놀이, 일시정지 경기
OSEN 기자
발행 2008.03.17 12: 27

어린 아이들의 놀이 중에는 “얼음, 땡” 놀이라는 것이 있다. 술래에게 잡히기 직전 “얼음”하고 외치며 동작을 멈추면, 다른 사람이 와서 “땡”하고 건드려주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놀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놀이가 아닌 프로야구에도 어느 순간, 얼음처럼 모든 상황을 정지상태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규칙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일시정지 경기(서스펜디드 게임)가 바로 그것이다. 일시정지 경기란 말 그대로 경기를 하다가 중도에 멈추고, 다음에 따로 날을 잡아서 나머지 부분을 마저 치르기로 결정한 경기다. 경기 중 우천 등으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고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대부분은 중단된 시점의 득점상황만을 가지고 승부를 가리게 된다. 흔히 듣는 강우콜드게임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중단된 상황이 다음 두 가지의 경우에 속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먼저 조명시설이 고장 났을 경우다. 이때는 고장이 난 부분이 고쳐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순서겠지만, 일정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면 일시정지 경기로 넘어간다. 이 규칙에는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정식경기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5회 이상 완료규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만일 5회를 넘기기 이전인 3회에 조명시설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면, 다음에 그 시점부터 이어 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는 홈팀이 인위적으로 노게임을 만들 수 있는 꼼수(?)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속뜻을 담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의 경우에는 홈팀과 구장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주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지만, 홈팀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구장이라면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조명문제가 원인이 되어 일시정지 경기로 넘어간 경우는 딱 한번 있었다. 1999년 10월 8일 전주서 열렸던 쌍방울과 LG의 더블헤더 2차전으로, LG의 1회초 공격이 끝나자마자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한 구장조명이 30분 이 넘도록 다시 들어오지 않아 결국 일시정지 경기로 넘어간 일이다. 2007년 여름엔,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SK의 경기(8월 3일)에서 1회부터 낙뢰로 인해 조명탑 전구의 일부가 나가는 바람에 경기가 한동안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여차했으면 통산 두 번째의 조명이상으로 인한 일시정지 경기가 선언될 뻔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사직구장에서 열렸던 롯데와 현대의 경기에서는 조명탑 일부가 꺼지자 어둑해진 홈플레이트 앞으로 김재박(당시 현대) 감독이 다가와 공이 잘 보이지 않아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 없다고 주심에게 어필을 한 적이 있었다.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켰는데, 어필 당시 타석에 있던 이숭용이 불충(?)스럽게도 우월홈런을 때려내 감독을 머쓱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일시정지 경기로 처리되는 두 번째 경우는 점수의 변동상황이 홈팀에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을 경우다. 이에 대해 규칙서에는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그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정 팀이 어느 회 초에 동점이나 역전 점수를 얻은 이후, 홈팀이 말 공격을 완료(제3아웃)하기 전까지 재차 리드하는 점수나 동점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날씨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었다면 일시정지 경기로 넘어간다. 풀어보자면, 홈팀이 동점을 허용했다면 다시 리드하는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역전을 당했다면 최소한 동점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5회를 넘겨 정식경기가 성립된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5회를 넘기기 이전에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노게임이 된다. 이 두 가지의 점수 변동가정을 제외한 다른 상황은 모두 콜드게임으로 중단시점에서 종료가 된다. 날씨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혹여 홈팀이 불리하다 해도 5회 이전에 발생하는 상황들까지 일일이 다 챙겨줄 수는 없다. 이 점이 조명시설 이상으로 인한 일시정지 경기와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다. 이처럼 미묘한 점수문제로 일시정지 경기가 된 사례는 프로 출범 이후 모두 4번 있었다. 1982년 해태와 MBC(광주 중단-동대문 완료), 1993년 빙그레와 쌍방울(청주), 1998년 해태와 한화(광주), 1999년 현대와 LG(인천 중단-수원 완료)전 등이다. 일시정지 경기가 일어난 구장과 속개경기가 열린 구장이 다른 경우는 해당구장에서의 경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상대팀 구장으로 옮겨가 치렀기 때문이다. 참고로 만일 두 팀간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일시정지 경기 사유가 발생했다면? 이때는 콜드게임이 된다. 한편, 일시정지 경기와 속개 경기의 팀과 개인기록 처리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부연하기로 한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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