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34)해태의 독특한 미팅 분위기
OSEN 기자
발행 2008.03.20 15: 58

(34)해태 선수단의 미팅 이야기 더블헤더를 싹쓸이 한 어느 날로 기억된다. “거, 대포 한잔 합시다.” 김응룡 감독에게 ‘수작’을 걸었다. “오늘은 안 돼.” “엉? 무슨 일인데.” “그럴 일이 있어.” ‘딱지’를 맞고 감독실을 나오는데 유남호 코치가 죽을 상을 하고 있다. “아이고, 오늘 또 죽었네.” “왜 죽어?” “아마 오늘 밤 비아까지 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김 감독의 화가 머리꼭지까지 올랐다는 증거다. 그런데다 ‘수작’을 걸었으니, ‘딱지’를 맞을 수밖에. 김응룡 감독이 특이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화가 나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당장 선수들을 다그치는 게 인지상정인데 김 감독은 꿀떡꿀떡 잘도 삼킨다. 게임에서 진날에는 미팅마저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별 일 없었다고 해서, 안심하면 오산이다. 날을 잡아 꼭 자극을 준다. 특히 다음날이 휴일이랄지 김 감독의 생각에 선수들의 기강이 해이해진 기미가 보이면 영락없이 미팅이나 로드웍 강행군으로 분위기를 옥죈다. 덕 아웃에서 야구배트를 부러뜨리거나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난로를 걷어차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치밀한 스케줄에 의한 김 감독의 ‘경영 노하우’다. 해태의 미팅에 관한 하나의 사례. 어느 날 최윤범 이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놨는데, 좀 늦겠다는 전화가 왔다. “원장님, 사정이 있어서 한 시간 쯤 늦겠습니다.” “뭔데?” “선수단 미팅이 있습니다.” “미팅이 최이사와 무슨 상관이야?” “우리 팀 미팅 스타일을 잘 아시면서.” 해태의 미팅은 김 감독의 성격만큼이나 독특하다. 먼저 김 감독의 간단한 스피치가 전달된다. 그 다음 수석코치가 감독의 전달사항을 해석하는 미팅이 뒤를 따른다. 또 투수, 야수, 내야수, 외야수 담당코치 등 파트별 전달사항 및 지시사항에 이어 선수회장 등 위에서 밑으로 쭉 내려간다. 결국 2~3년 차가 또 신참내기들에게 일장훈시를 해야 미팅이 끝난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이런 해태의 미팅조직은 희안한 결속력으로 승화되면서 아홉 번의 우승을 일궈낸 것이라 생각한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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