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오후 1시 인천공항. 올림픽 효자 종목인 배드민턴 대표 선수단이 3주간의 긴 유럽 투어를 마치고 한국 땅을 밟았다. 2월 26일 독일 오픈 배드민턴 대회를 시작으로 전영 오픈 슈퍼시리즈와 스위스 오픈까지 내리 쉴 틈도 없는 출전으로 선수단은 피곤했을 법했지만 의외로 건강해 보였고 활기찼다. 전영 오픈과 스위스 오픈에서 연속 우승을 거머쥔 남자 복식 정재성(26)- 이용대(20)의 소속팀인 삼성전기 측은 대형 현수막까지 준비해 반겼고 대한배드민턴협회 관계자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환한 미소를 보인 김중수(48) 감독의 모습에서 다가오는 베이징 올림픽의 메달 가능성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정재성- 이용대 조는 1990년대 초 박주봉- 김문수 조와 2000년대 김동문- 하태권 조의 뒤를 잇는 한국 남자 복식의 정통 계보를 이어갈 ‘환상의 복식조’로 평가 된다. 그 동안 배드민턴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수 많은 메달을 안겨준 ‘효자종목’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일시적으로 부진, 실망감을 안겨줬고 침체기를 맞이했다. 급기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배드민턴 사상 32년 만에 ‘노골드’의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유럽 대회를 통해 비로소 배드민턴 강국의 제자리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출전 선수들로서도 경험과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여자복식도 큰일을 해냈다. 독일 오픈에서 우승을 거두고 기분 좋게 전영 오픈에 나선 이경원(28)- 이효정(27)(이상 삼성전기) 조는 중국 강호들을 차례로 만났다. 그리고 8강→ 4강→ 결승까지 연거푸 3차례나 제치고 우승을 일궈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하는 권위 있는 전영 오픈은 테니스로 따지자면‘윔블던급’의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그런 대회에서 남녀 복식이 동반 우승을 거둔 만큼 그 의미는 크다. 특히 우리로서는 1990년 박주봉- 김문수, 정명희- 황혜영 조 이후 무려 18년만이다. 한국 배드민턴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셈이다. 배드민턴은 다가오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용대- 이효정 조의 혼합 복식과 남녀 복식, 남자 단식에서 메달권 진입을 노리고 있고 최대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대표팀은 입국장에서 곧바로 대한체육회에서 보낸 버스를 이용해 태릉선수촌으로 향했다. 모두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겠노라는, 틀에 박힌 소감을 전했지만 팀 내 맏언니인 이경원(28)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우승은 말 할 수 없이 좋아요. 그런데 차라리 이번엔 성적을 덜냈으면 좋을 뻔했어요. 이제 세계가 우리를 경계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겠어요? 그 어떤 세계대회보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올림픽에서 이런 결과가 나와야죠(웃음) .아마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홈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 텃세를 부릴 걸요?” 중국은 제 나라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남녀 단식, 남녀 복식, 혼합 복식 등 5개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주심과 선심제로 이뤄진 만큼 주심 이상으로 선심의 공정성이 전체 경기 흐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상위권 선수들의 실력은 거의 종이 한 장의 차이일 뿐 그날의 컨디션이 승패를 좌우하지만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가 판정에 대한 신뢰감이다. “이번 결승전에서도 선심의 오심이 몇 차례 나왔어요. 대회가 열린 곳은 영국이지만 중국인은 세계 어디에도 있잖아요. 선심이 중국인이라는 걸 확인하고 주심에게 ‘차이니스’라고 외쳤죠. 결과적으로 이겼기 때문에 더 이상 어필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걱정 되네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라경민(32. 전 대교눈높이)과 호흡을 맞춰 여자 복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경험이 있는 대표팀 8년차인 이경원은 “만리장성을 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굳은 표정을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필자는 선심의 자리에 앉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애국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자주 접하곤 했다. 부디 중국인들의 애국심이 양심을 넘어서지 않게 되길 바란다. 올림픽을 주최하는 인구 대국 중국이 과연 선심 배정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할 것인가 여하에 우리의 메달수와 색깔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단 5g에 불과한 셔틀콕이 그 어떤 공보다 무겁게만 느껴졌다.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